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테겔공항




1948년 소련이 베를린 봉쇄 움직임을 보이자 서방 연합국은 고립된 서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할 방안을 찾느라 고심했다. 당시는 미군 관할 구역에 있던 템펠호프 공항이 유일한 창구였으나 약 250만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전달할 물자를 공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서방 연합국 회의에서 미군이 “템펠호프 공항이 너무 작다”고 호소하자 프랑스군이 “그럼 우리 구역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게 어떤가”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프랑스 관할지인 테겔(Tegel)지역에 위치한 공군 비행장에 민간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새 활주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비행장에는 전투기 격납고와 짧은 활주로뿐이었다. 봉쇄 6주 후인 1948년 8월 초부터 프랑스군은 긴급 공사에 착수했다. 약 3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2,400m 규모의 활주로와 함께 부대시설이 지어졌고 그해 12월 정식 공항으로 승인받았다. 테겔공항은 이렇게 탄생했다.


연합국은 테겔공항과 템펠호프공항에서 수송기를 수시로 띄워 서베를린으로 하루 2,000톤의 물자를 실어나르는 대규모 공수작전을 펼쳤다. 냉전 시대 서방 연합군이 주둔한 서베를린에는 미국·영국·프랑스 국적 항공기만 비행할 수 있었다. 동베를린 점령국인 소련은 동독 영토를 통과해서 서베를린으로 갈 수 있는 특별항로 3곳을 지정했는데 서방 항공기는 이곳으로만 다녀야 했다. 베를린 영공 진입제한이 풀린 것은 독일이 통일된 1990년 10월 이후로 이때가 돼서야 루프트한자 등 독일 항공사가 테겔공항에 취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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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테겔공항은 수차례 터미널을 확장하며 하늘길을 통해 독일 수도 베를린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연간 이용여객은 지난해 기준 2,400여만명으로 프랑크푸르트·뮌헨·뒤셀도르프공항에 이어 독일에서 네번째였다. 지난달 31일 신공항인 브란덴부르크공항이 공식 개항하면서 테겔공항이 개항 70여년 만에 문을 닫았다. 베를린 당국은 폐쇄된 공항부지에 연구산업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냉전의 상흔을 간직한 상징물이 또 하나 사라지게 됐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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