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언더파 273타. 지난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의 우승 스코어다.
1일 끝난 올해 대회는 나흘간 7언더파 281타로 확 줄었다.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6월 한국여자오픈의 우승 스코어가 12언더파였고, 선수들이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지난달 KB금융 스타챔피언십 우승자도 9언더파였다. 4라운드 기준 7언더파면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우승 스코어로는 최저 언더파 기록이다.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 골프클럽(파72)은 이번 시즌 가장 어려운 시험장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선수들은 대회 기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난관을 만났다. 바람이 심하거나 러프가 깊지도 않아 눈으로 보기에는 스코어 내기가 어렵지 않은 듯했지만 막상 플레이해보면 버디 퍼트 하나 떨어뜨리기가 그렇게 힘겨울 수 없었다. 잔잔하지만 거의 매일 홀마다 방향이 바뀌는 바람이 깊은 러프 이상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유리판’ 스피드로 선수들 사이에 악명높았던 그린은 첫날 이후 급격히 딱딱해졌다. 탄도 높고 정교한 아이언 샷이 아니면 버디 기회를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2·3라운드에 극도로 까다로웠던 핀 위치가 마지막 날에는 다소 쉽게 조정됐으나 앞서 낯선 시험에 한바탕 혼쭐이 난 선수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어렵기만 한 시험은 아니었다. 선수들이 가장 곤란을 겪었던 2라운드에 장하나는 버디를 5개 떨어뜨렸고 마지막 날에는 박민지가 역시 5개의 버디를 몰아쳤다. 이런 가운데 더블 보기와 트리플 보기가 속출하고 한 홀에서 4타를 잃는 쿼드러플 보기도 컷 통과자들끼리 겨룬 3·4라운드에 총 4개나 나왔다. 결국 찬스를 살리는 집중력과 위기에 차분한 관리 능력을 골고루 시험했다는 뜻이다. 2라운드 10번홀(파5)에서 드라이버 샷을 332야드나 날린 끝에 간단히 이글을 터뜨린 선수(김아림)가 있을 정도로 장타자에 이점이 있는 코스이면서도 그린 주변과 그린에서는 다른 어느 코스보다 상상력이 요구됐다. 그 결과 특정 과목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전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강자를 우승자로 골라냈다.
‘세계 100대 코스’인 핀크스는 지난 4월 대대적인 러프 잔디 교체 작업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긴 장마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입은 잔디를 완전히 걷어내고 새로 입힌 것이다. 선수들은 “코스 상태가 지난해보다도 좋다”(임희정) “관리가 정말 잘 됐다. 못 쳐도 핑곗거리가 없다”(최나연·유소연)며 엄지를 들었다. TV 중계 등을 접한 골퍼들이라면 직접 쳐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마련. 대회 코스 세팅대로, 또는 비슷하게라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전화가 실제로 빗발치면서 이미 몇 달 치 예약이 마감됐다고 한다.
대회 기간 내내 화창했던 데다 미세먼지도 ‘좋음’ 상태가 유지된 가운데 산방산과 송악산, 멀리 마라도까지 보이는 탁 트인 조망을 선수들도 틈틈이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안전한 대회로 치러진 것도 특기할 만하다. 클럽하우스 입구에 설치된 3,000만원 상당의 ‘스마트 사물인터넷(IoT) 에어샤워’가 체온 측정부터 살균·공기정화·출입자 개인정보 저장까지 한 번에 워크스루 형태로 ‘코로나 제로’를 책임졌다. 3,000만원이면 KLPGA 투어 대회 방역 기기 중 최고가다.
한편 전우리·허다빈·최민경 등 우승 없는 미완의 대기들은 깜짝 우승 경쟁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4년 차 허다빈은 3·4라운드에 페어웨이 안착률 100%(28/28)의 완벽에 가까운 티샷 정확도를 뽐냈다. 김지현이 시즌 최고 성적(준우승)으로, 지난 시즌 신인상 조아연이 석 달 만의 톱10 진입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것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