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올해 8월 전자장치 부착 조건부 보석 제도(전자보석 제도)를 시행하면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도입한 손목형 전자장치(전자팔찌)가 제작 지연에 따른 공급 차질로 단 한 개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석 피고인들은 어쩔 수 없이 전자팔찌 대신 중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법무부는 “전자팔찌나 전자발찌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재판 중인 피고인의 ‘낙인 효과’로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2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조달청 입찰을 통해 지난 4월7일 전자팔찌 제작사업 총괄업체로 SK텔레콤, 협력업체로는 키즈폰 개발업체인 경기도 소재 A사를 선정했다. SK텔레콤의 총괄 아래 A사가 장치를 개발한 뒤 외부 업체에 제작과 조립을 맡기는 구조다. 15억여원을 들여 1,260대를 만드는 것이 법무부의 목표였다.
그러나 A사는 마땅한 국내 제조업체를 찾지 못했다. 결국 중국 광둥성에 위치한 제조업체에 제작과 조립을 위탁했다. 법무부는 제작 기한을 7월31일로 제시했다. 전자보석 제도가 8월 초 시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보석 제도는 구속된 피고인에게 전자팔찌를 부착시켜 조건부로 불구속 재판을 허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전자팔찌 제작에 계속 차질이 빚어졌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중국 공장이 문을 닫고 국내 기술진의 중국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제작 일정이 지연됐다. 이에 법무부는 7월이 돼서야 SK텔레콤으로부터 1차 납품을 받았고 시제품에서는 방수나 발열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하자가 여러 건 발견됐다. 이후 법무부는 다섯 차례에 걸쳐 보완 제품을 받았지만 모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재차 개선을 요구한 상태다. 완제품은 아직 하나도 생산되지 않은 상태다.
전자보석 제도 시행 이후 전국 법원에서 전자보석을 허가받은 피고인은 현재까지 60명이다. 원래 이들은 전자팔찌를 차야 하지만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전원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다. 법무부는 보석 피고인들이 전자팔찌의 대체재로 전자발찌를 차는 것이 현행법상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보석 대상자의 전자장치 부착 위치와 관련한 법률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자보석 제도는 재판 중인 보석 피고인들의 낙인 효과를 막기 위해 도입된 만큼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전자발찌는 4대 사범(성폭력·살인·강도·미성년자유괴)들에게 부착 명령이 내려진다. 당초 법무부는 피고인의 인권 보호를 이유로 전자팔찌의 실물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코로나19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우려까지 나오고 있어 제작 차질로 인해 연내 완제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법무부는 “내년 초까지 완제품을 납품받겠다. 제작업체 변경 등 제작공정 전반의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입찰 완료 시점이 4월 초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품이 더 늦어질 경우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