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최장수 TV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

1947년부터 73년간 방영




1947년 11월6일 미국 뉴욕 NBC사 스튜디오. 퇴임한 미국 우편국장에게 사회자와 토론자가 질문을 던졌다. 토론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가 처음 제작되는 순간이다. 요즘에도 매주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네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최초의 본격 토론이며 여성이 사회를 맡았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게스트로 출연한 최초 사례로도 손꼽힌다. 1975년 11월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의 특별 인터뷰가 1시간 동안 전파를 탔다.

네 번째 기록은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영역에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장수 TV 프로그램. 미국의 공중파 방송국 ABC와 CBS가 각각 ‘디스 위크’와 ‘페이스 더 네이션’을 ‘미트 더 프레스’와 동 시간대에 편성한 것도 NBC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오랜 염원이 깔려 있다. NBC의 성공 요인은 성역 없는 질문과 파격적 인재 발탁. 무엇보다 여성을 내세웠다. 신문기자 출신의 여성 진행자 마사 라운트리는 송곳 같은 질문으로 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키며 초기 6년의 도약을 이끌었다.


전통 매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상 속에서도 미국 TV 매체들의 휴일 오전 토론 프로그램의 입지는 여전하다. 일요일 오전 TV 토론 프로그램을 안 보면 월요일 출근 후 첫 회의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 말실수라도 하면 인기가 급락하는 ‘편안한 도살장’이라고도 불리는 토론 프로그램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출연하려고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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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비슷한 편성이 없지 않다. ‘미트 더 프레스’를 그대로 옮겨 심은 적도 있다. 결과는 실패. 심층 분석과 다면 접근보다 찬반 토론에 비중을 둔 까닭이다. 독자와 시청자들의 편향이 갈라져 있다는 한국적 언론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주로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치르며 시청자들의 증오심도 깊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갇혀버렸다. 토론 프로그램 시청률이 높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연예와 스포츠, ‘먹방’ 선호도가 높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언론 종사자들의 전문성과 열정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트 더 프레스’의 사회를 맡았던 팀 루서트는 2008년 12일 방송 녹화 도중 과로로 쓰러져 심장마비(58세)로 죽었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 부드러운 질문으로 답을 이끌어낸 루서트 같은 능력,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언론의 ‘기계적 중립’ 속에서 갈등은 심해져만 간다. 우리에게도 장수 토론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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