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무료는 상온노출”… 독감 주사 ‘강매’ 당하는 고령층

고령층 독감백신 유료 접종 비중 높아져

'무료는 상온노출, 불량' 무분별 정보 확산 영향

일부 병의원 접종자에 허위정보 제공...유료 강매

고령층 중심 독감백신 포기 인구도 늘어

진화 나선 의료계 "백신 접종 안하면 심혈관질환 우려도"

사진제공=연합뉴스사진제공=연합뉴스



“무료료 독감 백신은 상온에 다 노출됐다고 보면 됩니다”


최근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을 위해 서울시 동작구 소재 한 내과를 찾은 60대 A씨는 깜짝 놀랐다. 무료 예방접종 대상자인 A씨에게 의사가 “무료 백신은 상온에 노출됐다”며 유료로 접종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최근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백신은 13~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분류된 물량이기 때문에 이는 명백히 허위 정보다. 하지만 해당 병원은 “유료 백신은 의사가 직접 제약사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상온 노출 우려가 없다”고 말했고 결국 A씨는 3만5,000원을 내고 독감예방접종을 진행했다.

무료 예방접종 대상자인 고령층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떠도는 무분별한 정보에 노출돼 ‘유료 독감백신’을 접종하거나 접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일부 병·의원에서는 근거 없는 정보를 방문자에게 제공해 유료로 백신을 접종하도록 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해 혼란이 예상된다. 이에 의료계에서도 “독감 예방접종을 해서 얻는 실익이 더 크다”며 최근 독감예방접종 기피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정부 공급 물량 피하자’ 고령층 유료 접종 비율 확 늘어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까지 만 62~69세 어르신 접종자 211만6,919명 중 유료접종은 22만2,787명으로 전체의 10.5%에 달한다. 만 70세 이상은 428만8,690명 중 3%가량인 13만4,798명이 비용을 지불하고 예방접종을 진행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어르신 접종 639만5,101명 중 유료접종이 2%(13만2,770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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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만 70세 이상보다 만 62~69세 연령대에서 유료 독감 접종 비중이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무료 접종 비중이 높은 만 70세 이상은 이미 70% 이상 접종을 완료했지만 유료 접종 비중이 높은 62~69세는 접종률이 절반에 불과한 상황이다. 때문에 전체 고령층의 유료접종 비중은 남은 기간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유료 백신과 무료 백신 간 차이는 없다. 글로벌 백신 제조사는 WHO로부터 매 해 유행이 예상되는 백신의 균주를 받아 백신을 제조한다. 제조사는 이 중 일부를 국가 예방접종 사업의 물량으로 공급하는 것일 뿐 유·무료 여부가 백신의 질에 차이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한 독감예방접종 사업에서 유통된 물량 일부가 상온에 노출되거나 백신에서 백색 물질이 발견되는 등 올해 유독 독감 백신과 관련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SNS와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정부 공급 물량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유료는 안전하다는 근거 없는 정보가 확산하고 정부 공급 물량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이번에 국가예방접종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백신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이유다. 게다가 이 같은 정보를 일부 병·의원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면서 잘못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서워서 안 맞아’ 낮아진 고령층 접종률…의료계 “백신 포기는 돌연사 가능성 높여”



더욱 큰 문제는 독감예방접종 자체를 포기하는 고령층이 크게 늘어나는 점. 올해 10월 말까지 만 62~64세 어르신의 독감 예방접종률은 33.9%, 만 65세 이상은 65.2%로 집계됐다. 65세 이상만 무료 대상이었던 지난해의 같은 기간(73.7%)에 비해 크게 낮다. 독감 예방 접종 후 사망한 사례 중 상당수가 60대 이상 고령층이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보류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번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령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 등 감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처럼 접종을 하지 않으면 자칫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으로 번질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이에 의료계 역시 독감 유행을 앞두고 예방접종을 포기해선 안된다며 근거 없는 공포를 진화하고 있다. 배장환 충북대학교 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이달 2일자 대한의학회지(JKMS) 기고문에서 “독감 예방접종은 독감으로 인한 입원뿐만 아니라 심부전,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입원도 줄인다”며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예방접종의 포기는 독감의 발생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에 연관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발생을 높여 이차적인 돌연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독감예방접종 후 보고된 사망 사례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역시 JKMS 오피니언 코너에 “(현재 보고된) 역학조사 결과만으로도 백신접종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낮은 것으로 추론하는 게 타당하다”며 “독감 백신에 대한 우려는 유통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와 이로 인한 불신에서 비롯됐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과도한 언론의 관심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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