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올 초부터 서울에서 6억원의 예산으로 아파트 매입을 알아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 찾기가 어려워졌다. 정부의 보금자리론을 받으려면 주택가격이 6억원을 넘기면 안 되는데 위치 등 조건에 맞는 집이 점점 줄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올 초만 해도 집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며 “하지만 시기를 놓친 사이 가격이 올라 이제는 교통이나 가구 수 등 몇 가지 조건을 양보해야 6억원 이하의 집을 찾을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5개월 만에 서울에서 시세 6억원 이하 아파트가 8만가구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저가 주택에 속하던 아파트 단지들이 모두 가격이 올라 이제는 시세가 6억원을 넘었다는 의미다. 동시에 9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수는 7만가구가량 늘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겠다며 각종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중저가 아파트 감소 추세가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평가다.
5일 서울경제가 부동산114에 의뢰해 분석한 ‘서울시 아파트 가격대별 분포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38만2,643가구에 달했던 6억원 이하 주택 수는 10월 말 현재 30만4,124가구로 줄었다. 불과 5개월 만에 중저가 아파트가 20.52%(7만8,519가구) 감소한 것이다. 서울 전체 아파트에서 6억원 미만 중저가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5월 말 30.7%에서 현재 24.4%로 줄었다. 조사 시점인 5월 말은 6·17대책과 7·10대책, 주택임대차보호법, 지방세법 개정안, 8·4공급대책 등 각종 부동산 대책이 쏟아지기 직전이다.
자치구별로 보면 일부 지역에서는 6억원 이하 아파트 수가 반 토막 났다. 동대문구는 5월 말 6억원 이하 아파트가 1만4,443가구에 달했지만 10월 말 현재 7,413가구로 48.67% 감소했다. 서대문구 역시 1만816가구에서 6,262가구로 41% 줄었다. 관악구도 1만6,273가구에서 9,463가구로 1만가구 아래로 떨어졌다. 강북구는 5월까지만 해도 6억원 이하 주택이 10가구 중 7가구였지만 현재는 그 비중이 48%로 줄었다.
반대로 고가 주택의 수는 서울 전역에서 늘고 있다. 9억원 초과 아파트 수는 5월 말 50만991가구에서 10월 말 56만9,869가구로 6만8,878가구 증가했다. 이른바 ‘노원·도봉·강북(노도강)’ ‘금천·관악·구로(금관구)’ 등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택가격이 낮았던 지역에서 고가 주택이 2~6배 폭증했다. 도봉구의 경우 160가구에 불과하던 9억 초과 아파트가 10월 말 1,030가구로 543% 증가했다. 노원구도 1,358가구에서 4,904가구, 관악구도 773가구에서 2,281가구로 늘었다. 강북구의 경우 6·17대책 전까지만 해도 9억원 초과 아파트가 한 가구도 없었지만 현재는 26가구다.
시세 9억원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통상 6억원 안팎이다. 이에 시세 9억원 초과 아파트가 늘어날 경우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공시가격 현실화 과정에서 재산세 감면 혜택의 수혜자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재산세율을 0.05% 줄여주기로 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공급을 억제하다 보니 강남 3구 아파트는 귀해지고 그 가격에 서울 전체가 키를 맞추는 현상”이라며 “정부가 수요를 분산하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