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칙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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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살며 출판사 홍보 업무를 하는 30대 초반의 독신녀 브리짓 존스. 그녀의 일상은 항상 불안과 초조가 뒤따르지만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당당하고 구김살이 없이 살아간다. 그녀의 일상, 내면의 고민, 주위의 편견 어린 시선들이 1년 동안의 일기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진다. 1990년대 중반 영국 여류 소설가 헬렌 필딩이 내놓은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폭발적 인기로 영국에서 1년 넘게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이 소설이 미국과 아시아·동유럽 등으로 퍼져나가면서 20~30대 여성 독자들을 겨냥하는 ‘칙릿(chick lit)’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칙릿은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병아리)’과 ‘literature(문학)’를 합쳐 만든 말이다. 동명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히트를 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내 이름은 김삼순’ ‘여우야 뭐하니’ 등 평범한 노처녀를 소재로 한 얘기가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소박하고 현실적이지만 연애와 결혼을 일치시키지 않고 자기계발에 힘쓰며 성과 소비에 대한 속물적 욕망의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상을 그렸다. 하지만 이 칙릿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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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해졌던 칙릿이 다시 관심을 끈다.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지난달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에서 인기 콘텐츠 3위에 올랐다. 파리로 발령 난 미국인 젊은 여성 에밀리의 파리 생활을 그린 로맨스·코믹 드라마다. 벌써 시즌2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과 같은 옛 칙릿 작품을 보고 감상을 공유하는 현상도 생겼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시청자들이 파리·뉴욕 등을 배경으로 한 칙릿 영화를 ‘랜선 여행’으로 즐기며 대리만족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가 예술 장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우리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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