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아빠가 그리고 딸이 쓴 통영 바다 이야기

■[책꽂이] 통영, 아빠의 바다

김무근 그림·김재은 엮음, 플랜씨북스 펴냄

환갑 되던 해, 사고로 하반신 마비됐지만

고향 풍경 그리면서 새로운 인생 시작해

강구 안에서 본 동피랑, 2020, 김무근 그림.강구 안에서 본 동피랑, 2020, 김무근 그림.




봉평동 조개잡이 배, 2017, 김무근 그림.봉평동 조개잡이 배, 2017, 김무근 그림.


#아빠 김무근씨 이야기

1947년 생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고향 바다를 뒤로 하고 서울로 진학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치던 대기업에 들어가 회사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황소처럼 산 끝에 환갑을 맞았다. 이제 좀 여유롭게 살 수 있으려나 했는데, 사고가 났다.


하반신이 마비 됐다. 그저 누워 있었다. 그때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찾아와 붓을 손에 쥐어 줬다. 연필과 물감, 팔레트, 종이까지 가져왔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종이 위에 퍼져 나가는 물감이 자꾸만 시선을 잡았다. 맑고 푸른 색이 고향 앞바다의 물결처럼 느껴졌다. 한번 그려보자 싶었다. 유튜브를 보고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림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딸 김재은씨 이야기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빠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툭하면 주말에도 출근 했고, 회사 일 때문에 며칠씩 귀가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빠는 늘 건강했다.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잔병 치레 한번 하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어느 날 사고를 당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의 고통을 가늠할 길이 없어 자식으로서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때 고맙게도 그림이 아빠를 살렸다. 아빠는 사진 속 고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직접 보고 그리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아빠 그림 속 통영은 맑고 고왔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 쏟아졌다. ‘딸이 열어준 아빠의 온라인 그림 전시회’란 말이 가슴에 박혔다.

신간 ‘통영, 아빠의 바다’를 함께 펴낸 아빠 김무근씨와 딸 재은씨./사진제공=플랜씨북스신간 ‘통영, 아빠의 바다’를 함께 펴낸 아빠 김무근씨와 딸 재은씨./사진제공=플랜씨북스




아빠가 그린 그림에 딸이 이야기를 더한 책이 나왔다. 1인 독립 출판사 플랜씨북스에서 펴낸 ‘통영, 아빠의 바다’다. 환갑 넘어 휠체어를 타고 돌아갔지만 고향은 아빠 김무근 씨를 반갑게 품어줬다. 그 곳에서 김무근 씨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유쾌한 추억이 담긴 고향의 풍경을 종이 위에 옮겨 냈다. 통영 운하, 해저 터널, 봉평동 앞바다, 미수동 빨간 연필 등대, 미륵사 입구, 동피랑 등 통영의 명소가 그의 화폭에 담겼다.

딸 김재은씨는 아빠의 그림 속 통영 이야기를 다정하게 풀어냈다.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여인 ‘란’이 살았던 명정골, 작은 목선에서 개조개를 잡던 봉평동 앞바다 이야기 등을 아빠에게 전해 들어 글로 썼다.

김재은씨는 책을 펴내게 된 이유에 대해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 학교도, 제 일도, 일상도, 모든 게 멈춘 상황에서 문득 ‘아빠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데…’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며 “멀리 떨어져 만나기 어려운 가족이나 친구가 떠오른다면 지금 바로 안부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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