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했을지 몰라도 ‘트럼피즘’은 이제 막 시작됐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결정됐지만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바이든 정권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심판론’을 내세운 바이든 당선인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 유권자 절반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고 정책 변화의 키를 쥔 상원도 예상과 달리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반 대중 속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인 정치 행태에 열광하는 트럼피즘의 물줄기가 지속되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트럼피즘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후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묘사하고 다자주의 협력체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했으며 주한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등 미국 중심주의 일변도의 정책을 펼쳐왔다.
바이든이 트럼피즘에 맞서 상호주의, 동맹 중심주의를 강조했던 만큼 트럼프 정권에서 훼손됐던 다자주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이런 기대가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SCMP는 비록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졌지만 그가 예상을 뒤집고 7,000만표 이상을 얻은 것을 보면 차기 행정부는 미국 내 트럼피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시아 문제 전문가들 역시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무역 협상과 TPP의 변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막을 것이며 트럼피즘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했다고 SCMP는 전했다.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조속히 미국이 탈퇴해버린 TPP 협정에 복귀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미치 매코널이 이끄는 공화당 상원이 바이든 행정부를 도와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상원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대선 결과와는 달리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정치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바이든 앞에는 엄청난 압박이 놓여 있으며 그의 정책의 모든 걸음이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방해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피즘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바이든 새 행정부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당선인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에 부과한 보복 관세를 철회하려면 공화당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의식한 공화당이 바이든 지원에 나서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트럼프 영향력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피즘 반대에 난색을 표할 것”이라며 “바이든이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조금만 취하려 해도 공화당의 공세가 쏟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트럼피즘 지속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기관 고위 관리를 기습적으로 해임한 것을 두고 미국 정가와 언론들은 트럼피즘과 연관 지어 해석하고 있다. CNN방송에 따르면 백악관은 6일 보니 글릭 국제개발처(USAID) 부처장을 전격 해임하고 존 바사 처장대행을 부처장 대행에 임명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사·행정권 등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불복에 적극 이용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분석했다. 이는 부정선거 주장을 앞세워 소송전을 이어가면서 다른 한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력 누수를 막겠다는 심산으로 트럼피즘이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라는 의미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피즘에도 불구, 트럼프 대통령이 훼손한 동맹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며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SCMP는 일례로 바이든 행정부는 지지부진했던 한국·일본과의 방위비 협상을 조속히 타결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