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 답안으로 불린다.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그런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맹점을 드러냈다. 개표가 지연되고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현직 대통령은 불복을 예고했고 전통처럼 여겨졌던 승복 선언도 늦춰지고 있다. 우편투표를 둘러싼 소송 등 개표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이 기정사실로 굳어졌지만 불씨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혼란 속에 미국식 대통령선거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전 세계뿐 아니라 미국 언론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과 패권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미국의 대혼란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꼴사나운 모습의 본보기”라며 미국식 민주주의를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미 대선의 이런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자신들의 대통령선거 제도가 바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국의 정치인, 지식인, 일반 대중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복잡한 미국식 대통령선거 제도를 고수하는 데 크게 이견을 달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지금과 같은 복잡한 대통령 선출 방식을 전통으로 쌓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 권력 분립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 영향이다. 연방제의 전통 속에서 미국은 권력을 특정 한 명에 집중시키지 않고 철저하게 나눠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절대 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방제 각 주가 자신들의 재산권과 이해를 철저하게 지켜나가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이를 위해 권력을 입법·사법·행정부 세 개로 나눠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국회에는 대통령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까지 뒀다. 하원의원 임기는 2년으로 정하고 상원의원 임기는 6년으로 차이를 뒀다. 6년 임기의 상원도 2년마다 3분의1을 교체한다. 자칫 상하원 선거 때 시류에 흔들려 특정 정당이 상하원은 물론 대통령 자리까지 모두 장악하는 사태를 의식한 결과다. 한 정당이 상하원 다수 의석을 장악하고 대통령까지 독식할 경우 폐해가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787년 코네티컷 대타협을 통해 주별 인구 차이로 인한 문제점도 해소하려 했다. 인구수를 기초로 주별로 숫자가 다른 하원의원을 뽑게 한 것과 달리 상원의원의 수는 주의 인구와 무관하게 2명을 선출하도록 했다. 인구가 많은 특정 주의 이해를 반영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될 경우 상원에서 이를 막기 위한 견제 역할을 위해서다.
놀랍게도 이번 미국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도 이런 견제와 균형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으로 바이든을 선택하면서도 의원선거에서는 공화당의 편을 들어 블루 웨이브 흐름을 막았다. 유권자들은 상원 선거에서 민주와 공화 양당이 각각 48석씩을 가져갈 수 있도록 투표했다. 내년 1월 조지아주 2개 선거구의 결선 투표에 따라 무게 중심이 다시 이동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을 견제하려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번 미 대선에서 미국식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또 한 번 드러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는 충실하게 지켜졌다.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이나 한 명의 포퓰리스트 대통령에 의한 전횡과 독불장군식 정치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견제와 균형을 선택했다. 다수의 표를 바탕으로 일방적 결정을 내리려는 통치자에게 소수당 또는 야당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는 경고 메시지다. 맹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선거 제도가 지금껏 유지된 배경이자 힘이다. 거대 여당이 집권하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