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北 핵실험·미사일 도발땐 바이든 협상 의지에 찬물"

전직 美 관료들 잇따라 경고

北 내년초 ICBM 시험발사 등

'위기조성 외교카드' 고집하면

긴장 고조로 회담 불가능할수도

김정은. /연합뉴스김정은. /연합뉴스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국 대통령 당선을 선언한 가운데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차기 정부의 협상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전직 미국 관료들의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재선에 성공하면 북한과 신속하게 협상하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실무협상 중심의 ‘보텀업’ 방식을 선호하는데다 동맹 중시와 선(先) 비핵화 기조 성향이 뚜렷한 만큼 북한이 도발할 경우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경고인 셈이다. 현재 미국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국제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수해 발생 등 3중고로 허덕이는 가운데 내년 초에 북미협상을 앞당기기 위해 의도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는 9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북핵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중요성은 인정할 것이지만 코로나19 해결 등 미국 내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생각해 도발에 나설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관여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던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도 북한은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외교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었다”며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도발에 나선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협상 의지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그러면서 “북한이 현재 당면한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 번영을 추구하려면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협상을 추진하면서도 강력한 대북제재와 억지력을 유지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등과도 협력에 나설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 조정관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 유예를 중단하고 도발에 나선다면 다시 미북 간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고 공은 북한에 넘겨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이든 당선인은 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13년 7월18일 미국진보센터 주최 행사에서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지만 북한이 진정한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어야 가능하다”며 “과거에도 그들은 필요한 것을 얻으면 또다시 같은 도발을 감행하고 핵개발을 추진했으나 위기를 조장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북한의 반복된 태도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2004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이던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에 대해 “북한 지도자들은 (핵) 무기를 정권 생존의 궁극적인 보증으로 여기는 만큼 무기 포기를 분명히 꺼린다”며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이번 대선 기간에도 수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폭력배’ ‘독재자’로 지칭하면서 트럼프식 대북정책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 같은 일련의 발언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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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구성 기간 무력 도발로 ‘위기조성 외교’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은 국내외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마커스 갈로스카스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북한정보담당관은 “북한이 내년 초 다탄두 재돌입 탄도비행체(MRV)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담긴 기고문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국익연구소(CNI) 한국담당 선임국장 또한 최근 RFA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에 일종의 평화 제안을 한 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면 예전 각본으로 돌아가 긴장을 높일 것”이라며 북한이 ICBM 시험으로 타협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유사한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이상숙 외교안보연구소 연구교수는 2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내년 초 제8차 당대회 이후 “지난달 10일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무기 시험을 통한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도발 수위는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못 미치는 저강도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등장한다면 한반도 문제의 시급성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며 “협상이 재개되지 않더라도 북한의 핵 무력 증강에 따른 미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우리가 새로운 정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지 북에 잘 발신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미국 대선 기간 중 보인 북한의 반응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을 의식한 듯 최근 한미동맹 강화에 대해 연일 신경질적인 반응을 쏟았다. 지난달 29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이 ‘미국산 삽살개’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며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맹비난했고, 이달 1일에는 북한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가 한국 정부가 “혈맹이라는 미국으로부터 갖은 모멸과 냉대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바이든 당선 이후에는 사흘째 침묵을 유지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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