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친환경 정책만 믿고 수년간 친환경 발광다이오드(LED) ‘집어등(야간에 오징어 등의 어류가 몰려들 게 배에 켜는 등불)’ 개발에 투자해 온 국내 중소기업이 폐업위기에 몰렸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발단은 이렇다.
12일 해양수산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LED 집어등 제조업체인 오앤정라이팅은 친환경 LED 집어등 개발을 위해 지난 5년간 7억원을 투자했다. 기존의 메탈 집어등은 과열로 인한 어민 안전사고와 환경오염 우려, 유류비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많아 정부가 이를 친환경 집어등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시작하자 이에 발맞춰 친환경인 LED 집어등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LED 집어등 개발에 성공했지만, 막상 판로는 생겨나지 않았다.
정부가 어민들을 대상으로 집어등 교체 신청을 받지만 어민들이 바쁘게 오징어 조업 등을 해야 하는 기간인 1월~2월로 한정해서다. 오징어 잡이가 한창 진행될 때 신청을 받다 보니 신청 자체가 저조한 것이다.
정금조 오앤정라이팅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어민들은 매년 3월까지 오징어나 갈치 조업에 매달려야 해 1~2월에 신청을 끝내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한참 조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배를 멈추고 신청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어선주협회 등도 이 같은 애로를 개선해 달라며 최근 정부에 민원을 넣었지만 뚜렷한 답변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과 맞지 않은 교체신청 기간뿐만 아니라 신청을 해도 정부 예산을 받기 까지 1년이 걸리다 보니 초기 목돈을 넣어야 하는 부담을 안은 어민들이 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환경 집어등을 교체하면 정부가 국고보조 30%, 지방비 30% 등 총 금액의 60%를 지원하지만 실제 집행은 1년 뒤에 이뤄진다. 정부 지원금을 나중에 받게 되지만 초기 교체비용 100%를 어민들이 부담해야 하다 보니 신청이 저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바로 받게 되면 교체 비용의 40%만 내면 되지만 정부 지원은 1년 뒤에 이뤄지다 보니 대부분의 어민들이 집어등 교체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ED 집어등 교체 사업 예산이 연간 50억원이 안돼 정부지원 혜택을 받는 어민들이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집어등 교체에 1억~2억원이 들지만 연간 예산을 전국 항구별로 분배하면 평균 500만~800만원 수준에 그친다. 교체 수요에 비해 예산이 역부족인 셈이다.
정부 정책만 믿고 LED 집어등 개발에 전념해 온 오앤정라이팅과 같은 중소기업만 가만히 앉아서 피해를 보게 됐다. 실제 오랜정라이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출이 저조한 데다 올해 집어등 교체 건수가 한 건도 없어 그동안 투입한 연구개발(R&D) 비용 회수는 커녕 폐업까지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 지원도 없이 5년간 7억 원을 들여 LED 집어등 개발에 투자해 왔지만, 정부의 편의적이고 소극적인 행정에 판로가 막혀 생존마저 위태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오앤정라이팅 뿐만 아니라 정부에 등록된 LED 집어등 생산업체 10여곳 모두 경영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에 “과거 LED 집어등 교체 사업이 지자체에서 부실하게 이뤄져 정부가 연초 수요조사, 예산 집행 등을 관리하고 있다”며 “지침상 매년 1~2월 (교체사업) 신청을 받고는 있지만 추가 수요가 발생하면 별도로 지원 공고를 내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