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여명] '뉴딜'과 '국민R&D센터'

고광본 선임기자

교수, 출연연·기업 연구원 은퇴땐 노하우 사장

고경력 과기인 대학·공공기관에 '국민R&D센터'

노장청 함께 창업·기업자문·과학교육 場 제공을

앱개발 위주 기존 창업지원공간과 차별화될 것

고광본 선임기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인 이우일 서울대 기계공학부 명예교수가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한 뒤 연구실을 비워줬다. 대학에 반납한 장비는 관련 교수들에게 배분됐지만 그의 수십년 연구개발(R&D) 노하우는 인수인계되지 못했다. 평생 1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지원받아 차곡차곡 축적했던 오랜 연구 경험과 지식·네트워크가 한순간에 사장된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교수가 퇴임하면 부교수가 승진해 실험실을 물려받아 지속성을 꾀한다.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의 연구를 계승해 지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도제식 시스템 덕분이다. 이 회장은 “미국은 테뉴어(종신교수)를 하면 정년퇴임이 없고 젊은 교수들과 공동연구를 같이 하고 일본은 정년은 65세로 우리랑 같지만 노하우가 전수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고경력 과학기술인이 팔팔한데도 정년 이후 제대로 쓸 데가 마땅치 않다”고 아쉬워했다.

정부가 대학, 출연 연구기관, 기업에 무상 지원하는 R&D 액수가 내년 27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애써 키워놓은 과학기술인의 경험이 전수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출연연에서 61세 정년 이후 4분의3가량이 우수연구원(4년 임금피크 정규직)이나 전문연구원(3~4년 비정규직)으로 머무르지만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고 이후 단절되기는 마찬가지다.


교수와 출연연, 기업 연구원 등 경험이 많은 과기인은 여건만 갖춰지면 영향력이 큰 기술 기반의 창업이 가능하다. 위험부담이 크고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하니 주저할 뿐이다. 은퇴 이후 기업과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마침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성공을 위해서도 고경력 과기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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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국 주요 대학과 공공기관 등에 과기인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국민R&D센터(가칭)’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곳에서는 과기인이 스타트업이나 벤처·중소기업에 자문하고 대학이나 출연연·기업과 공동 R&D를 하게 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있는 직장인이나 대학원생·학부생과 어우러져 바이오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등 기술기반 창업도 할 수 있다. 중고교 과학 꿈나무를 키우는 장이 될 수도 있다. 해외 저개발국에 적정기술을 지원하는 과기 공적개발원조(ODA)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노장청을 망라해 기술기반 창업과 멘토링, 해외진출이 가능한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기지가 되는 셈이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행·대기업·대학·출연연이 앞다퉈 제공하는 창업지원 공간에서 주로 스마트폰 앱 등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스타트업 위주인 것과 완연히 차별화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본 연구장비 구축, 창업 전문가와 투자사 입주, 플랫폼 구축과 일부 운영비를 지원하되 민간의 자율 생태계를 보장해야 한다. 과기인을 위한 책 쓰기와 강연, 유튜브 제작, 건강·자산관리, 인문학 등 맞춤형 교육도 필요하다.

김홍일 디캠프·프론트원 센터장은 “우후죽순 들어선 스타트업 육성 공간이 연극으로 끝날 우려도 적지 않은데 이렇게 R&D 파워를 가미할 경우 창업 임팩트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은 “대덕연구단지에 노장청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R&D센터를 통합 운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종구 충북대 수의대 교수(바이오톡스텍 대표)는 “정년을 맞은 우수과학자가 인생 이모작으로 지적서비스 가치를 창출하도록 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베이비붐 세대 교수들의 은퇴가 본격화됐는데 이렇게 집단지성을 발휘해 국가경쟁력을 키우도록 하는 게 바로 뉴딜 아니냐”고 했다.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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