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요즘 분위기가 폭풍 전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그룹 주요 계열사 실적이 악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내수 소매 유통업을 하는 롯데의 사업 방식이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점을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명확히 확인시켜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그룹 분위기가 밝지 않다”며 “다른 주요 대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코로나19 타격을 크게 받아 위기감이 크다”고 전했다.
위기감 큰 신동빈
16일 재계와 학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외부 경영학계 인사들을 만나 롯데가 처한 위기의 근본적인 배경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주요 기업들이 외부 컨설팅업체에 정식 의뢰해 사업 구조조정을 벌이는 경우는 있어도 총수가 직접 외부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롯데그룹 사업 포트폴리오가 외부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고 중장기적으로 온라인 흐름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을 신 회장에게 전했고 신 회장도 상당 부분 공감했다”고 말했다. 최근 그룹 내 주요 회의에서는 롯데를 제외한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의 신성장 동력 사업까지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차세대 반도체,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SK와 LG는 전기차 배터리 등 차세대 성장 사업을 가지고 적극 키우는 데 반해 롯데는 그렇지 못하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았고 질책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롯데는 최근에서야 롯데정밀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전지박(동박) 제조사인 두산솔루스에 2,900억원을 간접 투자하는 등 영역 확장에 나섰다. 롯데알미늄도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박 공장 증설 투자에 뛰어든 상태다.
사업 포트폴리오 한계
롯데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크게 △식품(제과·칠성음료) △유통(백화점·마트) △화학·건설(케미칼·정밀화학) △관광·서비스(호텔·면세점)로 나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그룹 매출 74조5,000억원 가운데 유통 사업 매출이 약 36.2%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화학·건설(34.4%), 관광·서비스(17.5%), 식품(11.9%) 순이다.
유통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직격탄을 주기는 했지만 롯데가 최근의 온라인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023530)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3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67억원과 비교해 80% 이상 급감했다. 호텔롯데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특히 강점이 있는 소매 유통 분야에서의 ‘오프라인→온라인’ 전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굼뜨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 7개 유통 계열사들이 올해 4월 론칭한 온라인 쇼핑 플랫폼 ‘롯데ON(온)’의 월 사용자는 86만명(9월 기준)에 그친다. 신세계(쓱닷컴)는 138만명이고 쿠팡의 경우 1,991만명이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전통적인 소매 유통 강자이고 포트폴리오도 충분히 다각화돼 있는데 그 장점을 온라인 시대를 맞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 환경에도 크게 흔들린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사건이 터졌을 때 반일 불매운동의 불똥이 롯데 식품·유통 계열사로 튀었다. 이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롯데마트가 중국 현지에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철수했다. 롯데케미칼(011170)도 지난해 상반기 6,454억원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로 올 상반기 530억원 적자 전환했다.
이르면 내주 정기 인사
이런 위기감 탓에 코앞으로 다가온 연말 사장단 인사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는 이르면 다음주 초부터 사업 부문(BU)별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정기 인사가 12월19일 단행됐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여 가까이 앞당겨지는 셈이다. 이미 지난 8월 신 회장의 최측근이던 황각규 전 부회장이 물러나고 롯데하이마트(071840) 대표를 지낸 이동우 사장이 롯데지주(004990) 신임 대표에 오른 터라 후속 인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표는 일성으로 “그룹 포트폴리오와 미래 전략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신 회장도 최근 몇 년간 “신속하고 과감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강조해온 만큼 이번 정기 인사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예고된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