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노이에 바헤

지난 2014년 3월 독일 방문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독일 외교부에 홀로코스트 기념비 방문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중국 측은 대안으로 시 주석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베를린의 추모시설인 ‘노이에 바헤(Neue Wache)’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현지 언론들은 메르켈 총리가 중일 간의 역사 갈등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며 중국 측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노이에 바헤는 전쟁과 독재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독일의 국립추모관이다. 이곳은 원래 1818년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이 나폴레옹과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고 왕실 경비대를 위해 세운 석조 건축물이다. 새로운 경비대·위병소를 뜻하는 노이에 바헤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이곳에서는 빌헬름 1세의 100세 탄신행사나 프로이센 건국 200주년 기념식 등 국가적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1931년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위한 무명용사 묘지로 결정된 이래 수차례 용도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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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노이에 바헤를 독일의 국립중앙추도관으로 바꾸고 전쟁과 압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헌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쟁의 공포와 함께 희생자 추도 정신을 기리기 위해 평화주의자인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을 배치하기로 했다. 이 조각은 어머니가 숨진 아들을 부둥켜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으로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를 닮아 ‘베를린의 피에타’로 불리고 있다. 평판에 ‘전쟁과 압제의 희생자들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조각상은 지금도 찾는 이들에게 큰 울림과 감명을 안겨주고 있다.

영국 찰스 왕세자 부부가 15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부부와 함께 노이에 바헤를 찾아 헌화했다. 찰스 왕세자는 양국의 불편한 과거사를 상징하는 건물에서 두 나라가 영원한 벗이자 동맹으로 남을 것이라며 화해와 번영의 정신을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노이에 바헤를 한번쯤 찾아 치유와 화합의 시대 정신을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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