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하고 싶다고 연락했어요. 저예산 독립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그걸 해?’ 하는 반응도 들었지만, 제 생각은 ‘왜 못해, 와이 낫(Why not)?’이었죠.”
걸그룹 f(x)의 ‘크리스탈’ 정수정은 이미 경력 10년이 넘는, 대중에게도 익숙한 배우다. 하지만 주로 대중적인 드라마에 출연해온 그의 영화 첫 출연이자 주연작이 독립영화 ‘애비규환’이라는 소식에 뜻밖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수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평소에 ‘작은 영화’들을 많이 보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현실감 있고 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독립영화의 특징이 제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애비규환’은 재혼 가정에서 자란 대학생 토일(정수정 분)이 고등학생 호훈(신재휘 분)과 사랑하고 임신한 후 15년 전 헤어진 친아빠를 찾아 고향인 대구로 향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서울로 돌아와선 행방불명된 예비아빠를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딱딱 맞아 들어가는 배우들의 합이 돋보인다.
정수정은 영화에서 5개월차 임산부이면서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토일을 자연스럽게 연기해 아이돌 이미지를 지워냈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주변에서 칭찬해주시니 감사하다”며 “부산에서 GV(관객과의 만남)을 할 때는 처음인데다 오픈채팅으로 질문을 받아서 실감을 못했지만 그게 좋은 반응이었더라”고 돌아봤다.
영화 전체 분량 중 80~90%에 등장하는 원톱 주연이라 부담은 컸다.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에 들어가서도 쉬운 일은 없었다. 특히 임산부 연기가 그랬다. 그는 “백팩을 종일 앞으로 메고 다니는 걸로 생각하면 된다. 임신을 간접 경험했다”고 돌아봤다. 자세가 흐트러져서 목도 아프고, 여름 촬영이라 배에 찬 땀을 일일이 닦아내며 촬영해야 했다.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역시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던 또래의 최하나 감독과 서로 이야기하고 토닥이며 극복한 다음에는 끝까지 거침없이 임했다. 그는 “감독님을 보자마자 친해질 것 같았는데 이야기를 해 보니 공통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수정은 “토일 캐릭터와 비슷한 정도를 따진다면 60~70% 수준인 것 같다”며 “감독님이 제 행동을 캐릭터에 써먹어야겠다고 자주 얘기했는데, 임신 사실을 숨기고 대구까지 가는 깡은 없다”고 웃었다. 영화 막바지, 나름의 완벽한 계획 아래 행동하던 토일은 호훈에게 “100%가 아니라도 괜찮아” 라고 얘기한다. 정수정은 특히 20대 관객들에게 비슷한 말을 해 주고 싶다고 한다. “망하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고 공감도 위안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최근 OCN 드라마 ‘써치’도 마무리한 정수정은 당장 차기작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앞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면 부지런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소속사를 옮긴 것도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하고 싶었고, 뭘 하더라도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에 따른 결정”이라고. 그렇다고 가수 활동에서 멀어지겠다는 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