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정부의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을 사실상 백지화한 가운데 정치권이 동남권 신공항을 결국 가덕도에 신설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신공항 구상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14년 만에 부산 시민들의 염원에 손을 들어주는 형태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18일 검증위에 따르면 동남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는 2006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공식 지시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지시로 당시 국토연구원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항공수요조사와 사전 타당성 검토를 시행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박재호 의원은 지난 9월 김해신공항 백지화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주장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덕도 신공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업입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2007년 12월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취임 이후엔 실무 검토 결과를 토대로 이를 백지화했다. 2011년 3월 20명으로 구성된 입지평가위원회가 사업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대구·경북이 지지하는 밀양 지역과 부산·경남이 지지하는 가덕도 모두 사업 최소요건인 50점에 입지가 미달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2012년 11월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지난 2016년 6월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실시한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평가 결과’ 에서 압도적 1위는 김해 신공항 확장이었다. 당시 2위는 대구·경북 등이 지지한 경남 밀양 안이 차지한 가운데 부산이 지지한 가덕도 신공항 안은 3위에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대선 당시 ‘동남권 관문공항과 공항복합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대 공약 중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에 부산을 동북아 해양수도로 육성하겠다며 이 같은 복안을 내세웠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2018년 12월 기존 김해 신공항 확장 안을 토대로 정부 기본계획안을 수립했고, 그해 6·13 지방선거로 당선된 민주당 출신 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은 이 안에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했다. 대선 전부터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던 문 대통령 역시 정부 안 재검토에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총선 당시 부산지역 유세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적으로만 판단한다면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만들 수 있다”며 “국회의원 5명만 뽑아준다면 대통령 임기 중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직접 가덕도를 찾아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는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대로 용역이 진행된다면 부산시민이 바라는 대로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해 6월 국토부와 부·울·경 지자체는 이 문제를 국무총리실에서 논의하는 데 대해 합의했고 같은 해 12월6일 이낙연 총리 시절 총리실 산하에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은 김수삼 한양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17일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검증위 발표 직후 정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김해신공항 검증결과 후속 조치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는 이번 검증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계획을 면밀히 마련해 동남권 신공항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속도를 내 달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의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홍남기 기재부 장관,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김영훈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도 검증 결과 발표와 동시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을 발의키로 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의원총회 후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