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나는 미운오리새끼였다. 나는 걸핏하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네 글은 너무 감정적이야.” “지나친 주관성은 글쓰기에 도움이 안 돼.” “차라리 문예창작학과에 가지 그러니 왜 국문과에서 이 고생이니.” “국문과는 공부를 하는 곳이야, 네 마음대로 글을 쓰는 곳이 아니야.” “논문은 객관성이 생명이야. 너의 글은 너무 소설 같아.” 그때마다 자존감에 치명상을 입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대상, 즉 소설가나 시인들을 너무 사랑했고, 그 사랑을 조금 더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논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객관적인 언어에서 길이 막혀 버렸다. 객관적으로 쓰려 할수록 뭔가 내 안의 소중한 것이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이성과 또렷한 논리, 그것으로 글을 쓸수록 왠지 내 안의 소중한 감수성과 따스한 열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비난을 들으며 스스로 힐난했다. 내가 뭔가 크게 잘못된 사람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똑같은 글쓰기의 스타일을 ‘논문’이 아닌 ‘나의 책’이라는 그릇에 담으니 대중의 반응은 놀랍도록 따스했다. “선생님의 글을 보고 있으면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제 마음을 보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산후우울증을 치유했어요.” “우리 딸도 작가님처럼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대요.” 그 따스함에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의 글쓰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거지? 그건 바로 ‘내가 노는 물’이었다. 학계에서는 비판을 넘어 비난을 당하기 일쑤였던 내 글이, 대중 독자들과 함께 하는 에세이 시장에서는 따스한 환대를 받았다. 나는 처음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물 위에 비춰 본 미운 오리 새끼처럼 울컥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오리와 백조 사이의 위계는 결코 없지만, 나는 미운 오리새끼로 타박받는 것보다 같은 무리들의 사랑을 받는 백조이고 싶었다.
나는 학자의 자리에서 작가의 자리로 옮겨 오면서,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았다. 전에 없었던 따스한 마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내게 어울리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자신이 될 수 있다. 나를 꾸미기 위해 혈안이 될 필요도 없고, ‘사랑받지 못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만큼 ‘같은 무리들의 사랑을 받는 백조’의 자리를 찾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모험이며 자기발견이다.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가 보다’라는 소외감에 시달릴 때는, 진정으로 ‘나의 나다움’을 받아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는 적극적인 모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결코 사랑받을 수 없다’는 단정적인 평가는 금물이다. 학자의 자리에서는 사랑받을 수 없고 작가의 자리에서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오리와 백조’를 구분하는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학부는 독문과, 대학원은 국문과를 선택했는데, 어느 날 독문과 교수님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칭찬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정여울, 아, 그 글 잘 쓰는 애, 기억나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아직 학교에 계시다는 걸 듣고 뭉클해졌다. 그 무서운 학교생활 속에서 나는 미움받은 것만은 아니구나. 나는 항상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넓은 세상에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 깨달음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우리는 결코 ‘미움받는 오리’만일 수도, ‘사랑받는 백조’만일 수도 없다. 그 둘을 구분하는 흑백논리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순간, 누군가에게 뜻밖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일 수도 있으니. 나는 이제 ‘학자의 마인드’를 버리지 않고, ‘작가의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꿈꾼다. 미운 오리 새끼 시절의 나 또한 소중하니까. 결코 버릴 수 없는 나다움 중에는 미운 오리 새끼 시절을 견디던 ‘빛나는 똘끼’가 엄연히 존재하니까. 우리는 자기 안의 가엾은 미운오리새끼와 눈부신 백조를 다 함께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가 남아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