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학자들의 최대 모임인 한국경제학회가 현 정부의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긴급재난지원금 등 이전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거의 없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한 증세는 오히려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경제학회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재도약의 기반이 되는 기업들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서둘러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로나로 경제활동 제약●소비도 주춤
20일 한국경제학회 경제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한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 지출의 재정승수가 평소보다 낮게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재정승수는 정부 지출과 국내총생산(GDP) 증가 규모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로 승수가 1이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만큼 GDP가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재정승수를 0.6~0.7로 추산했다. 정부가 1조원을 써도 GDP는 6,000억~7,000억원만 늘어난다는 의미다.
최근 코로나19가 수요·공급뿐 아니라 심리 등 여러 측면에서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승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감염병이 경제활동을 제약하면 실질금리가 하락하더라도 소비·투자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올해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이전지출의 재정승수 효과는 측정조차 어려울 정도로 낮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전지출이 상당히 늘었는데 이전지출은 평소에도 승수가 상당히 낮거나 유의하게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활성화를 위해 이전지출을 사용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채발행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
정부의 국채 발행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가 확장재정정책을 펼칠 때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으로는 조세와 국채 발행 두 가지가 있다. 세금은 징수 자체로 경제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는 반면 국채 발행은 국가에 부담을 줘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국채를 발행해 GDP를 0.1~0.2% 올리면 5년 뒤 GDP 대비 부채비율은 1% 상승하는 것으로 봤다. GDP 상승 효과에 비해 국가채무는 5~10배 늘어나는 셈이다.
문제는 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4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100조원이 넘는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이에 국가채무는 역대 최대 규모인 8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김 교수는 “국가채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이자율 상승, 국가 신인도 하락, 국가채무 이자부담 증가 등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재정정책 효과는 단기적이라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국가부채 수준이라도 규모가 커지면 예상하지 못한 충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재정정책 효과는 단기적이고 결국 국가부채를 증가시킨다”며 “재정적자를 내면서까지 경기를 부양하면 세수가 증대되고 재정전건성이 유지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증세한 노무현정부 때 소득불평등 심화
이날 포럼에서는 정부의 증세정책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정부의 증세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득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대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가난한 부모가 자녀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돼 인적자본 축적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며 “증세보다는 가난한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할 수 있도록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정권별 가구소득 변동계수 추이를 분석해 이를 증명했다. 변동계수 상승은 소득불평등 심화로 추정할 수 있는데 외환위기로 변동계수가 급상승한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고 증세를 진행한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변동계수가 올랐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했고 박근혜 정부는 근로소득세율 최고세율 구간을 낮추고 새 구간을 추가하는 등 증세정책을 펼쳤다. 송 교수는 “증세가 소득불평등을 개선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최근 부동산 세제와 관련된 증세 논란이 있는데 정책담당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법인세율을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인 법인세 하락 추세에서 한국만 법인세율을 올렸다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였는데 2018년 이후 평균보다 높은 국가가 됐다. 소득분배를 개선하려면 법인세를 올리지 말고 개인소득세의 누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세수 구조에서 국민부담률은 20% 후반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세수 구조 개선을 위해 개인소득세와 사회보장부담금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