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시민들 누구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회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자체 권고안을 냈지만 3년 가까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인권과 관련한 각종 정책에 개선 권고를 하는 독립적 국가기구가 정작 자체 권고는 지키지 않은 것으로 모순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20일 서울경제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가인권위원회 투명성 제고 권고 추진사항’에 따르면 인권위는 2018년 1월 자체 혁신위원회의 권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투명성 제고방안을 논의했다. 혁신위는 “인권위의 책임성과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8가지 개선 사항을 인권위에 권고했다.
이에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회의록 실명기재와 회의 일자 공개대상 확대 등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의사공개 원칙 준수와 회의록 공개시스템 마련, 회의 녹화영상 공개 및 생중계 등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권고 사안은 다루지 않았다. “시민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하거나 직접 방청하지 않는 한 어떤 논의가 진행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혁신위 지적에도 의사일정·회의자료·심의내용·회의록 등 4가지 의사공개원칙 중 의사일정만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그나마 시민들이 회의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 정보공개청구 시스템은 현재 사이트 오류로 마비됐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일부 민원에 한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기능에서도 장애가 발생하자 “사이트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로 여러 사용자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오류가 언제부터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독립조직인 인권위는 외부 감시와 견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가기구”라며 “여러 투명성 제고방안을 권고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인권위원과 관료들의 도덕성에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권고안 추진 과정과 결과를 점검할 수 있는 조직을 인권위 내에 설치할 것을 요구했지만 인권위는 ‘내부적으로 진행하겠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지적이 잇따르자 인권위는 “향후 홈페이지를 통한 회의록 게시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