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에 ‘부린이’가 있고 주식시장에 ‘주린이’가 있다면 필드에는 ‘골린이(골프+어린이, 골프 입문자)’가 몰려들고 있다.
과거 ‘귀족 스포츠’로 여겨졌던 골프는 스크린골프의 식지 않는 인기와 퍼블릭(대중제)골프장 증가 등으로 문턱이 낮아진 지 오래다. 여기에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 골프붐에 불을 댕겼다. 뻥 뚫린 야외에서 사람 간에 큰 접촉 없이 즐길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골프 유입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일 골프장예약 1위 업체인 엑스골프에 따르면 이 업체를 통한 골프장 예약은 올 상반기에만 전년동기 대비 10.6% 늘어나 20만건을 돌파했다. 하반기 들어 증가세가 다소 꺾였다고 하나 이는 외부예약 플랫폼을 거치는 대신 자체 예약을 늘리는 골프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필드골프를 즐기려는 골프인구가 폭증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실제로 비수기에 접어드는 오는 12월 초까지도 골프장마다 예약이 꽉 차 있다. 발길이 끊기기 시작하는 11월 말 평일 야간 라운드도 손님들로 붐빈다.
엑스골프 관계자는 “골프장들로부터 받는 티타임이 줄어든 대신 예년에는 수요가 낮았던 지방 골프장 투어 상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까지 투어 상품 누적 신청이 전년동기 대비 162% 증가했다”며 “수도권 외에 전국 각지의 골프장 상품이 판매 개시 5분 안에 마감된다. 12월 초까지 남는 자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수년 전 국회의원 출신의 한 인사는 “오고 가는 시간에 공 치고 뒤풀이까지 하면 8~9시간씩 걸리는 ‘한국형 골프’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는데 최근 이 ‘미친 짓’의 열풍을 주도하는 이들은 공교롭게도 2030세대다. 과거 골프라고 하면 기성세대, 그것도 주로 특권층이 과한 복장과 비싼 골프클럽으로 무장한 채 은밀하게 즐기던 ‘꼰대들의 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2030 골린이들이 뛰어든 요즘 골프는 합리적으로 즐기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하는 ‘쿨한’ 여가활동이라는 이미지가 새로 입혀지는 분위기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검색으로 ‘골린이’를 치면 게시물이 무려 14만개 이상 된다. 골프장에서의 샷 영상이나 기념사진 대부분은 젊은 층이 주인공이다. 골프클럽과 의류는 여전히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얼마든지 합리적인 소비를 실천할 수 있다. 중고클럽 시장이 자리를 잡은데다 일부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도 골프의류를 만든다. 업계에서는 20대가 타깃인 온라인쇼핑몰 무신사가 최근 골프복 판매를 시작한 것을 2030 골프붐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0대 직장인 골퍼 A씨는 “라운드를 한번 나가면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하지만 ‘하루를 버린다’기보다는 ‘하루를 온전히 알차게 즐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