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RCEP와 CPTPP의 격차

김영필 뉴욕특파원

'글로벌 패권국' 되겠다는 시진핑

정치적 수사뿐인 RCEP 띄웠지만

中에 CPTPP 수준 개방 기대 못해

비현실적인 몽상에 휘둘려선 안돼




사흘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 30%를 아우르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에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시 주석의 한마디에 중국 매체들은 중국이 CPTPP를 이끌 것처럼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RCEP와 CPTPP는 수준이 다르다. 사실 RCEP는 ‘정치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에 가깝다. RCEP의 강점은 그저 크다는 데 있다. 반면 RCEP는 개방 수준이 낮고 노동·환경 기준이 없으며 서비스·투자 부문도 제한적이다. CPTPP와 비교가 안 된다. 핵심국가인 인도 역시 빠졌다. 원산지 기준을 통합하게 됐지만 세계 최대 FTA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성과는 아니다. 한중 FTA가 그랬듯 RCEP로도 중국의 한한령은 막을 수 없다.


지금까지 중국은 선진국과 FTA를 맺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개방을 해야 하는 CPTPP는 중국에 버겁다. 미국의 복귀 가능성도 변수다. 시 주석의 말이 가벼운 이유다.

그런데도 시 주석이 RCEP를 넘어 CPTPP까지 거론한 것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오는 2030년 미국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총액 기준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GDP에서 미국을 앞서는 날, 패권국이 된다는 얘기다.

국내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GDP 기준으로는 방글라데시가 핀란드보다 강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0년 추정치를 보면 방글라데시의 GDP는 3,177억6,800만달러(약 354조9,400억원)로 핀란드(2,678억5,600만달러)를 500억달러가량 앞선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방글라데시는 최빈국이고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는 북유럽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 아닌가.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GDP를 보면 의문이 풀린다. 핀란드는 4만8,461달러, 방글라데시는 1,887달러로 25분의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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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사례일까. 올해 인도의 GDP는 2조5,925억달러로 우리(1조5,867억달러)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가 과학과 군사(핵무기) 강국이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보다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도 그렇다. 올해 미국의 1인당 GDP는 6만3,051달러, 중국은 1만839달러로 추정된다. 10년 뒤에도 이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지난 5월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금 중국에서는 6억명이 월수입 1,000위안(약 17만원) 전후이고 1,000위안으로는 집세 내기도 힘들다”고 말한 것이 좀 더 진실에 부합한다.

한 나라의 국력은 GDP 총액과 1인당 금액, 인구수, 국방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정치체제와 사회·문화 수준도 고려 대상이다.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애플과 테슬라 같은 기업이 쏟아져나오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신뢰할 수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도 화이자와 모더나 같은 미국 기업이 만든다.

얕은 수준의 RCEP가 속 빈 강정이듯 중국이 미국을 GDP 총액에서 능가하더라도 갈 길이 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RCEP를 두고 “CPTPP에 비해 관세 인하가 적고 분쟁 해결과 경쟁, 서비스 부문이 취약하다”며 “이 같은 약점 때문에 중국은 (RCEP를 통해) 지역 내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질시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중국의 희망과 현실을 또렷이 구분해야 한다. RCEP가 한미 FTA를 뛰어넘는 협정처럼 선전하는 청와대와 정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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