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CTO로 변신하는 바이오벤처 창업자

경영 전문인에 맡기고 창업자는 연구·기술개발에만 집중

상호 견제·외풍 안받고 R&D 지속 장점에 도입사례 늘어

바이오벤처 사이에서 기업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창업자는 기술개발에만 몰두하는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공개(IPO)나 주가관리 등 회사 경영은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에게 맡기고,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업화 한 창업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는 방식이다. 경영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창업자는 최고기술개발자(CTO)로서 개발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을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신테카바이오, 뉴라클사이언스, SCM생명과학 등 바이오벤처기업들은 창업자가 경영 대신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신테카바이오는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유전자 빅데이터에 알고리즘 기술을 적용해 신약 개발을 효율화하는 회사다. 창업자인 정종선 대표는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의사 출신인 김태순 경영총괄사장이 경영을 담당한다.


줄기세포와 항암제를 개발하는 SCM생명과학도 마찬가지. 창업자인 송순욱 인하대 교수는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벤처캐피탈 한국투자파트너스를 통해 이병건 대표를 영입했다. 이 대표는 녹십자, 종근당 등 국내 굴지의 제약사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지분 21.96%를 보유한 송 교수는 지분율이 2.53%에 불과한 이 대표에게 경영과 관련한 전권을 넘겼다. 이 대표는 미국의 코이뮨을 인수해 항암제 후보 물질을 파이프라인에 추가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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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치료제를 개발 중인 뉴라클사이언스 역시 창업자인 성재영 고려대 의대 교수는 연구에 매진하고 SK케미칼,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신약개발을 담당했던 김봉철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 성 교수는 10년 이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기존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신경교흉터 촉진인자’를 찾아 뉴라클사이언스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이 신약후보물질의 사업화를 맡았다. 미국 내 여러 특허를 출원했으며 내년 하반기 상장에 돌입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창업자가 연구개발을 지휘하면 실적 등 경영지표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연구개발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기간이 긴 바이오 관련 산업에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교수 출신이 많은 바이오벤처의 특성상 창업자들은 경영에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며 “직접 경영을 맡으면 투자유치, 기업공개, 주주관리 등에 신경을 쏟아야 해 정작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투자자들이 단기 수익을 얻기 위해 회사가 잘 하는 분야보다는 쉽게 주목받을 수 있을 만한 분야에 집중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창업자가 CTO를 맡음으로써 바람막이 역할도 할 수 있다. 상장 바이오 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주주들이 주가부양을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제품을 개발하라고 요구했었다”면서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가 연구개발을 총괄하면 이런 요구들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자와 창업자 간 상호 견제가 가능해 합리적인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임상시험에 실패했던 한 바이오벤처의 경우 기술을 쥔 창업자가 경영까지 맡으며 견제 없이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진행했던 부분이 현재의 위기를 맞게 한 원인이라는 업계의 분석이 나온다. 이 기업은 유상증자 직후 주주들의 자금을 연구개발 대신 고위험 사모펀드에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큰 홍역을 앓았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의 창업자가 경영까지 총괄하고 있는데다, 임직원 역시 대학 교수였던 창업자의 제자들로 이뤄져 견제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회사가 길을 잃고 조금씩 삐걱거릴 때도 이를 제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만 창업자와 경영자를 분리하는 것이 무조건 능사인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창업자와 경영자가 갈등을 겪는 경우다. 실제 상장을 준비하는 한 바이오벤처는 창업자와 경영자 사이의 불화로 기업공개가 늦춰지고 있기도 하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창업자와 경영자를 분리할 경우 두 사람이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오랫동안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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