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재소집하는 데 일단 합의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다시 가동하자는 국민의힘의 주장을 박병석 국회의장이 받아들인 가운데 민주당도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은 여전히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다음달 2일 본회의 통과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표면적으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명분 쌓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민주당이 예고한 대로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경우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형편이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포함해 장외집회까지 고려하며 국회 보이콧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절대열세인 의석수를 넘어서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 의장은 이날 김태년 민주당,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정례회동을 마친 직후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재소집하는 데 여야 간 이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모두발언에서는 “결점이 적은 후보를 뽑는 것”이라며 “좋은 후보가 나오도록 노력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의장의 재논의 요청에 동의했지만 야당의 의도적인 시간 끌기 때문에 공수처가 출범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집을 미룬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처장 후보추천위가 24일 다시 열려도 후보를 확정하지 못할 경우 25일 법사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의 강행처리를 진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주 원내대표는 “공수처법 취지대로 야당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추천위를 계속하는 노력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해 양당 간 이견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날 회동 전부터 양당은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괴물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의 쓰레기 하치장”이라는 주 원내대표의 전날 발언을 문제 삼고 “야당의 집요한 방해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오랜 교착이 풀리기를 바라지만 이제 더는 국민을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해달라”며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작심’이 최근 조사한 당내 집단심층면접(FGI) 결과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해당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180석의 의석을 확보하고도 민주당이 ‘무능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신중’했던 이 대표가 ‘강경 자세’로 돌변했다는 해석이다. 실제 자가격리 중인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 처음으로 글을 올려 “공수처 출범을 더는 늦추지 않도록 하겠다”고 ‘당심’을 다독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처장 후보추천위의 재가동 요구가 받아들여졌지만 여당의 독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사법체계·수사체계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나마 안정됐다”며 “여기 검증되지도 않은, 여러 법적 문제가 있는 공수처를 가져와서 공수처장마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한다면 사법체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 “사기꾼도 이렇게는 안 한다. 건국 이래 최악의 정권”이라고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여당의 공수처법 개악 시도가 연동형 비례제, 보궐선거 무공천 당헌 뒤집기에 이은 자기부정과 민주정치 파괴의 결정판”이라며 “공수처법 개악은 민주당 정권의 총칼이 되고 장기집권을 여는 열쇠가 될 게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대표는 야권의 공동투쟁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야권이 공동대응을 하더라도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운 민주당의 법 개정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일부 의원들이 정기국회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제안하고 있지만, 이 역시 국회 재적 의원 5분3 이상(180석)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어 회기를 바꿀 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확산 앞에서 장외투쟁에 나서기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처장 후보추천위가 재가동된 만큼 여야 모두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방 강행에 여당도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속도 조절 가능성을 내비쳤다.
/송종호·김혜린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