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시작했던 성당을 준공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넉넉지 못해 잘 짓지는 못했습니다.”(1910년 2월9일 정규하 신부의 사목 서한 중)
강원도 횡성 풍수원성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은 지난 1907년 지어진 건물로 서울 약현성당(1892년)과 완주 되재성당(1893년), 서울 명동성당(1989년)에 이어 한국에 세워진 네번째 성당이자 한국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강원도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인 만큼 지역에서는 중요한 문화재로 꼽힌다.
풍수원성당이 자리한 원터마을은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 탄압이 심해지자 경기도 용인의 신자 40명이 피난처로 삼았던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이다. 지금의 성당이 들어선 것은 1896년 2대 정규하 신부가 부임한 뒤의 일이다. 초가집으로 된 본당이 있던 자리에 정 신부가 신자들과 함께 나무를 패고 벽돌을 구워 4년 만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초창기 성당 대부분이 외국의 특정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것과 달리 풍수원성당은 다양한 건축양식을 혼합한 형태다. 정 신부는 한국 최초의 성당인 약현성당을 모델로 바실리카식 본채와 로마네스크식 천장, 고딕식 기둥과 종탑을 채용해 성당을 세웠다. 이는 이후 지어진 한국 성당의 표준 모델이 됐다. 1900년대 초에 세워진 성당들에서는 풍수원성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성당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아치형 정문을 통과해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좌우로 늘어선 벽돌 기둥이 지붕 구조물을 받치고 있고 그 아래 신도들을 위한 의자가 놓여 있다. 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사 때 신을 벗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100년 전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앉아 미사를 봤다고 한다.
정 신부는 사목활동 대부분을 풍수원성당에서 보냈다. 1912년 벽돌조 건물로 지어진 구 사제관(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63호)은 그런 정 신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정 신부는 겨울에는 온돌방이 있는 1층에서, 여름에는 2층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1평 남짓한 정 신부의 방에는 평소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오르간이 놓여 있고 성경과 미사경본·성광도 전시돼 있다. 검소했던 정 신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성당은 주일 오전11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객 출입은 금지됐다. 성당 내부를 보려면 미사가 진행되기 전에 찾아야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면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만큼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당 옆 산책로를 따라가면 100년 역사의 성체현양대회가 열리는 강론광장과 14개의 판화로 예수님의 수난의 길을 형상화한 십자가의 길, 유물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다.
/글·사진(횡성)=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