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각각 0.2%포인트씩 끌어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빨라지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 이상으로 상향될 경우 한은의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성장률이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급한 성장률 상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26일 경제전망을 통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1.1%, 내년 3.0%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8월 발표한 올해 전망치 -1.3%를 상향 조정한 데 이어 내년 전망치도 기존 2.8%에서 끌어 올렸다. 오는 2022년 성장률은 2.5%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은은 성장률 상향 조정 배경에 대해 지난 3·4분기 수출이 전기 대비 15.6% 증가하는 등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4분기에 경기 저점을 지났다는 판단 아래 이번 겨울 코로나19 재확산을 감안하더라도 내년에는 글로벌 경기 흐름이 개선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수출 증가율을 9.3%로 높게 예측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코로나19 재확산의 부정적 영향이 여전히 크지만, 그 영향을 넘어설 만큼 수출이 생각보다 더 나아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한은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한 경제 영향이 올해 상반기보다는 작지만 8월 재확산 때보다는 클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1.5~2단계 수준을 유지할 것을 전제로 한 만큼 전국적 유행 본격화를 나타내는 2.5단계로 상향되면 성장률 전망도 수정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질수록 민간소비 충격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날 신규 확진자 수가 500명을 넘으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상향될 가능성이 생긴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향후 전망도 확실하지 않다. 한은은 이번에도 시나리오별 전망치를 발표했는데 코로나19가 내년 초반부터 점차 진정되는 낙관적 시나리오의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은 내년 3.8%, 내후년 3.1%로 반등할 것으로 봤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내년까지 이어져 2022년 중반 이후에나 진정되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이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은 2021년 2.2%, 2022년 1.9%로 주저앉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0.5%에서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1.0%, 1.5%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전월세 가격 상승 영향으로 근원인플레이션을 0.2%포인트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취업자 수는 올해 20만 명 급감한 뒤 2021년 13만 명, 2022년 21만 명으로 점차 회복할 것으로 봤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0%로 만장일치 동결했다. 금통위는 올 3월 0.50%포인트 내린 데 이어 5월 0.25%포인트를 추가 인하한 뒤 6개월째 동결 상태다. 추가 인하 여력이나 부동산·주식 등 자산 시장 과열 등을 고려했을 때 현 수준보다 기준 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거시경제가 완만히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섣불리 완화적 통화 정책 기조를 변경할 단계가 아니고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