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건 연결이 아닌 단절 능력이다

[책꽂이] 운둔기계

■김홍중 지음, 문학동네 펴냄




현대사회에서 완벽한 범죄는 존재하기 힘들다. 폐쇄회로(CC)TV와 인터넷 아래 모든 것이 감시되고 발각된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간은 매우 안전하고 편리한 사회를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숨을 곳이 사라졌다. 그에 따른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가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스토킹을 당하거나 악플에 상처받은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과도하게 연결되고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이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간 ‘은둔기계’에서 이런 문제들이 병리 현상이라기보다는 문명사적 변동의 한 징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초연결 사회에서는 오히려 단절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은둔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역설한다. 여기서 말하는 ‘은둔’은 초연하고 귀족적인 탈속이나 세계 도피가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정신적 간격의 확보와 같은 일상적인 실천을 가리킨다.


책은 학술적 글이 아니라 단상을 자유롭게 풀어낸 산문집이다. 짧고 읽기 편한 글이지만 그 안에 묵직하고 깊은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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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바이러스와 인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명칭이라는 함의를 넘어서 시대의 탁월한 존재론적 형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통제하기 어려운 미세한 작용, 기존의 사회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재구성하는 힘, 사회적 삶에 가져온 파괴적인 영향력의 폭과 깊이를 매일 느끼고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바이러스를 행위자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만일 바이러스에 생명과 활동력이 없다면 타인과 악수를 하거나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위를 겁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문명에서 정치적 현상, 미디어적 현상, 경제적 현상, 심리적 현상, 사회적 현상, 기호학적 현상 모두가 바이러스라고 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하기 위해, 혹은 지나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교가 아닌 은둔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1만6,000원.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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