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국굴기’가 가일층 공격적이다. 시쳇말로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달 23일 참전 70주년 연설에 나선 시진핑 중국 주석은 6·25전쟁에 대해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북중 우호를 과시하며 대한민국에 대한 배려 없이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4일 일본을 방문해 연 공식 기자회견에서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가 중국 영토”라며 센카쿠 열도의 수역에 들어오는 일본 어선에 대해 “중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화평’의 자취 없이 자기주장만 ‘훅’ 들어온 셈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거쳐 ‘화평굴기’를 제시했던 중국이 이처럼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시 주석이 중심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2013년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에서 중화 민족의 부흥과 중국몽이 제시되고, 2017년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거론된 것은 마오쩌둥의 탄압으로 농촌 지역을 전전하고 공산당에 입당하는 데 열 차례 이상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했던 부친 시중쉰의 영향 등을 받은 시진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공세적 또는 도전적 태세를 시진핑 개인에게만 돌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도 하겠다. ‘빛(칼의 빛·도광)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은 그동안 힘을 기르기 위해 자국 중심적 또는 ‘중화주의적’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렸을 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중국은 당분간 오로지 평화적으로 경제 발전에 몰두하겠다면서 제시한 덩샤오핑의 ‘화평발전론’을 좀 더 목소리를 내겠다는 ‘화평굴기’로 전환시킨 것은 국내적으로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국제적 분위기에는 ‘화해적’ 세계관으로 대응했던 후진타오 전 주석이었다.
그럼에도 후 전 주석의 ‘화평굴기’를 참전 70주년 연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애국주의나 반미적 선동으로 전환시킨 몫은 시 주석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의 미중 갈등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고도 하겠지만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이러한 ‘대국굴기’가 주변국인 한국이나 일본으로부터 공명을 얻지 못하면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특히 센카쿠 열도에 대한 왕 외교부장의 적나라한 영유권 주장은 최근 센카쿠 열도를 향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중국 공선 등의 출몰을 생각할 때 결코 말만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에 자신의 커진 몸집에 가해지는 제한들에 한계를 느끼며 결국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겹쳐지기도 한다.
한반도 주변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긴박한 상황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예컨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제시할 유연한 대중 정책이 갈등을 완화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한 유연성이 오히려 중국의 회색 지대 전략을 더욱 강화해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겠다. 그 이후의 전개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을 한국으로서는 가능한 한 모든 대비를, 외교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강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또한 과거 치욕에 대한 분풀이와도 같은 이러한 움직임을 보면서 되새기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재를 있게 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현재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포함한 근대화에 동참해 이견이 있어도 상대를 배척하거나 위세로 누르지 않고 아우르며 성실히 일한 결과이며, 따라서 한국인으로서 앞으로도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이의는 없을 것이다. 최근 다양한 협업으로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한류의 성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힘은 바로 이러한 포용성에 있다. 한국이 추구하는 동북아 평화 협력의 길도 자주와 평화의 가치에 공히 기반을 둔 이러한 국내외적 포용성으로 더욱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