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우주로 가는 포차

ㅇ



박해성 作

방파제를 바라보며 엉거주춤 주저앉은 포장마차는


바람이 불 때마다 곧 날아갈 듯 죽지를 퍼덕인다

노가리를 구워놓고 재채기하듯 이별을 고하는 남자

그 앞에서 여자가 운다, 나는 번데기를 좋아하고 당신은

나비를 좋아하지 소주잔을 비우며 그가 중얼거린다

그래,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자, 한잔 더

술맛도 모르면서 무슨 시를 쓰니,

밤꽃이 흐드러진 유월 숲을 등지고 서 있던 사람

얼굴을 반쯤 덮은 수염이 고독처럼 이글거렸다


너는 시를 사랑하고 나는 신을 사랑하지, 경전을 요약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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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체로 시작한 그의 말에 나는 벌 쏘인 듯 심장이 얼얼했다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자, 마지막으로 딱 한잔만

부두에 묶인 배처럼 우주로 가는 로켓처럼

엑소더스를 꿈꾸는 걸까, 엉덩이를 들썩이는 포장마차

거기서 파는 안주는 실연처럼 너무 매워 눈물이 나지만

정말이지 나 미치도록 괜찮다네, 아슬아슬 다 괜찮아

마주 앉은 신에게 술잔을 높이 든다, 건배!

스무 살이 떠난 자리, 길고양이 울던 자리

랭보가 빈 잔을 앞에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체 게바라가 실눈 뜨고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

번데기하고 나비하고 그게 그거라니, 삶은 메추리알이 데굴데굴 구르더군요. 시를 사랑하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게 그거라니, 신이 씨익 웃으며 ‘ㄴ’자 썰매를 벗더군요. 심각한 난 시인 당신과 2인 1조로 섬세한 연애 퍼즐 맞추는 건 가망 없어 보였죠. 우리는 저마다의 항성을 찾아 서로 다른 궤도로 공전해갔죠. 스무 살에 갈라진 자리 스무 해 만에 돌아와 보니 우주정거장 같은 포차는 그대로군요. 또 다른 랭보와 체 게바라들이 별이 되러 가는군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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