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가중시킨 ‘글로벌 식량 위기’가 북한을 더욱 가혹하게 옥죄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외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어 아직은 식량 사정이 ‘최악’은 아닌 것으로 평가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료 공급과 노동력 투입 등이 급감해 타격이 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난민 발생’ 등을 촉발해 한반도 정세를 흔들 수 있는 불안 요소로 꼽힌다.
4일 세계식량계획(WFP)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상황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좋지 않았는데 최근 한층 악화되고 있다. 북한 국토 중 농작물 경작에 적합한 땅은 15~17%에 그치고 농지 중 논 비중은 30% 수준이다.
태풍과 가뭄 등 자연재해도 북한의 식량난을 가중시켰다. 지난 2012년 태풍 볼라벤에 따른 산사태 등으로 10만 1,000헥타르(㏊) 상당의 농지가 쓸려나갔고 2017년 가뭄으로 5만 ㏊ 상당이, 지난해에는 태풍 링링으로 홍수가 발생해 4만 6,200㏊ 의 농지가 각각 피해를 입었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은 관개 및 배수 체계 등의 수리 시설이 부족한데다 피해 복구도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식량 부족 현상은 북한의 고질병이 됐다. 농촌진흥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작물 생산량은 464만 톤으로 ‘필요 식량’(550만 톤) 대비 86만 톤가량 부족했다. 북한은 기후 조건이 좋을 때도 최고 식량 생산량이 연 480만 톤에 그치는 실정이다.
WFP에 따르면 북한이 외부에서 들여온 식량은 2012년 64만 6,000톤에서 2018년 25만 7,000톤으로 급감했으며 2017년부터 강화된 대북 제재로 재정 고갈은 심화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4분기 북한이 중국에서 들여온 식량은 1,378만 달러 규모로 2년 전 같은 기간(2,693만 달러)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북한의 식량 위기를 둘러싼 우려는 코로나19가 더해지며 커지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1월 하순부터 국경 봉쇄에 들어갔는데 이로 인해 농산물 직수입은 물론 밀무역조차 거의 중단됐다. 북한 농업의 기계화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모내기나 수확기 등에 학생·군인 등을 동원하기도 어려워졌다. 특히 북한은 비료 공장 가동에 필요한 원료와 전력을 수입에 의존해왔는데 국경 봉쇄 장기화 및 글로벌 공급망 붕괴 영향을 받아 비료 수급이 크게 제약을 받았다.
최용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 주민 다수가 중국 쪽으로 건너가 동북아 안정이 크게 위협받은 바 있다”며 “코로나19로 북한의 식량 위기가 증폭될 경우 유사한 위기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한반도 정세 영향이 가시화하기 전 대응책을 마련하려 하지만 미국의 정권 교체기로 대북 정책을 놓고 한미 간 심도 있는 조율이 필요해 대규모 지원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올 10월 국감에서 “코로나19와 태풍 피해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내년 봄 이후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대북 인도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우리 측의 지원을 계속 거부해 별다른 진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