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野 빠진채 잇단 단독 의결...국회, 巨與의 '거수기' 전락

[무너지는 법치주의]

조항 하나하나 보는 축조심사 생략...선입선출 원칙도 무시

법안 내용도 문제지만 일방통행식 추진에 졸속 입법 우려

"여야 협치 위한 합의점 못 찾으면 피해는 국민에 돌아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의 김도읍 간사와 법사위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무산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의 김도읍 간사와 법사위원들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무산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을 예고하면서 174석의 의석을 확보한 거여의 입법 폭주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당 내부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 추진도 문제지만 여당의 일방통행식 입법 절차로 국회가 거여의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 두 집단은 이념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극심하게 갈라져 있다”며 “결국 ‘관계’가 파괴돼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소수 존중이 결여된 다수결의 민주주의는 독재와 같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이낙연 대표가 지난달 24일 공수처법과 국가정보원법, 기업규제 3법 등 15개의 미래 입법 과제로 분류한 쟁점 법안들을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들 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시간문제라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회법 제85조에 따라 법안을 심사하는 상임위원회에서는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은 174석을 확보한 가운데 범여권까지 합하면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인 300석의 60%인 180석을 웃돈다.

실제 민주당은 다수결로 각종 절차를 생략하면서 쟁점 법안 처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축조심사(逐條審査) ‘패싱’이다. 축조심사란 법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꼼꼼히 심사하는 방식으로 국회법 제57조에도 소위원회가 축조심사를 생략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29일 민주당은 임대차보호법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한 뒤 축조심사 등의 절차를 생략했다. 축조심사가 진행될 경우 야당이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서 토의가 길어져 법안이 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회의 당일까지 법 조문을 읽어볼 수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에 거여의 입법 독재로 졸속 입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앞서 여당이 강행한 임대차보호법 역시 ‘입법 모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월세 계약 연장을 의무화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 단위인 가운데 계약 기간 중 임대료 증감을 요구할 수 있는 차임증감청구권은 1년 단위로 지정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쿨존(어린이 보호 구역) 내 사망 사고에 대한 과잉 처벌 내용으로 졸속 입법 사례로 꼽히는 ‘민식이법’ 역시 축조심사를 생략한 채 국회 본회의마저 통과됐다.


나아가 민주당이 개혁 입법 성과에 속도를 내기 위해 스스로 세운 원칙마저 지키지 않으면서 이에 대한 거센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올 6월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위해 안건 설정을 원내대표 간 합의에 맡기던 관행에서 탈피해 컨베이어벨트식으로 올라온 순서대로 처리하는 ‘선입선출’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김도읍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는 “후 순위에 있던 공수처법 개정안을 (안건 목록에) 거꾸로 제일 위로 올렸다. 선입선출의 원칙을 완전히 위배한 것”이라며 법사위 보이콧에 나섰다. 그러나 백혜련 민주당 법사위 간사는 “선입선출은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 계속 지켜졌던 원칙은 아니다”라는 변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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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에서는 여야 갈등이 폭발했다. 지난달 26일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출석을 두고 야당과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김도읍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의 사보임을 요청하고 언론인 출신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라고 말한 것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에 야당은 법사위 보이콧에 돌입했고 “유감”이라는 윤 위원장의 사과에 ‘알맹이’가 빠졌다며 보이콧을 이어갔다.

반복되는 상임위 파행으로 여당은 상임위에서 야당 의원의 불참에도 법안 의결을 강행하면서 야당 배제를 노골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앞서 여당은 지난달 30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상태로 법사위에서 ‘BTS 병역법’ 등 52개의 법안을 의결하고 정보위원회에서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이달 1일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 위원들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며 퇴장하자마자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단독 의결했다.

이 교수는 “국회가 운영되는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과 제도, 나머지는 관계”라며 “현재 후자는 양당 간 제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 운영이 전자로 귀결되면서 여당은 숫자로 밀어붙이고 무기력해진 야당은 책임 떠넘기기에 집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큰 틀에서 여야가 독소 조항 등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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