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3개 업종 탄소중립 비용만 400조..."인프라 지원 선행돼야"

[급발진 탄소중립]

수소환원제철 공정 교체에 110조 필요...경제·현실성 의문

정유·화학 친환경 전환 인센티브 모호...정부 지원 약속해야

"정책 수립 과정 기업 목소리 반영 안돼...추가 의견 수렴을"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정유·화학 공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정유·화학, 철강 등 업계는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추진 전략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연합뉴스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정유·화학 공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정유·화학, 철강 등 업계는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추진 전략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실현 추진 전략 발표에 산업계에는 태풍 전야의 긴장감이 팽배하다.

한국 산업계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뤄진 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한다는 방향성만 재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친환경 공정 전환에 따른 비용 증가와 일자리 감소, 세금 인상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탄소 다(多)배출 업종으로 지목된 철강, 정유·화학 업계가 느끼는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 발표대로라면 국내 주요 산업을 무너뜨릴 ‘급소’가 여전히 다수 노출돼 있는 꼴”이라며 “정부가 나 홀로 발길을 재촉하지 말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서 기업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7일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등 주력 수출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는 ‘제조업 르네상스 2.0’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업종별로 철강 산업에는 수소 환원 제철과 전기로를 적용하고 시멘트 산업에는 석회석 대체 원료와 수소 기반 소성로를 도입한다.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나프타를 바이오 혹은 수소에 이산화탄소(CO2)를 결합한 원료로 대체한다. 정유 산업은 연료를 전환하고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신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탄소 다배출 업종 공통적으로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과 에너지 효율 개선, 그린 수소 활용 등을 강화할 방침이다.


산업의 가치 사슬 전 과정도 저탄소 구조로 바꾸기로 했다. 탄소 함유 원료를 저탄소·무탄소 원료로 대체하고 생산공정은 탈탄소 지능형 설비·공정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큰 틀이 제시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 조정의 진통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지 뚜렷하지 않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특히 탄소 중립 투자 비용과 이에 따른 매몰 비용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점에 우려를 표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탄소 중립 비용으로 오는 2050년까지 최소 400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철강 업계에서는 앞서 정부가 제시한 수소 환원 제철과 관련해 경제성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철강 업체들이 수소 환원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려면 기존 용광로(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정부의 지원 정책 없이는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남정임 철강협회 기술환경실장은 “우리나라 고로 철강 업체들이 수소 환원처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투자와 매몰 비용은 110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그린 수소화 전력에 대한 인프라 구축을 전제로 정부가 길을 제시한 후에 공정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해외 철강 산업의 구조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저탄소화 목표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의 위상이 약한 유럽의 전략을 뒤쫓는 것을 반복하기보다는 국내 산업 발전의 전망과 경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국가 간 공정한 경쟁을 위해 탄소 비용을 고려한 한중일 철강 무역 공정거래 협정 추진 등을 통해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철강 제품 단가 상승에 따른 경쟁력 상실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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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화학 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사업 재편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를 두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정유·화학 업계가 그 대상에 포함될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인지 드러나지 않아 업계에서는 추측만 무성하다. 정부의 전략안에는 인센티브 제공 사례로 내연기관 완성차·부품 업체만 언급됐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정유 3사가 5조 원의 적자에 허덕여도 정부는 각종 지원을 약속해준 항공·여행 업계와 달리 각자도생하라는 메시지만 내놓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현재의 탄소 기반 사업을 줄여 미래를 준비하려면 적어도 탈황 설비 또는 수소와 관련한 제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시도하는 기업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약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학 업계 관계자도 “이미 대부분의 화학 기업들이 기초 유분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합성수지로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지만 빠른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규제보다는 인센티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탄소 중립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운영되는 기간 동안 관련 기업이 직접 의견을 낼 기회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 담당자와 교수·협회 등이 참석해 기업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한동희·이수민·박효정기자 dwise@sedaily.com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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