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젠은 1853년 장쑤성에서 태어나 청나라의 마지막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해 한림원 관리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무기력하게 패배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1899년 실업자들을 구제하겠다면서 난퉁(南通)에 중국 최초의 주식회사인 방직 공장을 설립했다. 또 영국의 방직기와 증기선을 수입하는 등 서방 기술을 적극 도입해 비단·섬유기계·제분·운송 등 20여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장젠은 사회 공헌 차원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사업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그는 ‘교육은 어머니와 같다’는 신념 아래 1903년 난퉁사범학교를 세웠으며 난퉁여자사범학교·난퉁중학교 등 근대 교육 시설들을 잇따라 설립했다. 그가 직접 세운 학교만 370여 개에 달할 정도다. 1905년에는 중국 최초의 현대식 박물관인 난퉁박물관을 세우는 등 문화·복지 사업에도 열정을 보였다. 덕분에 난퉁은 한때 ‘장젠의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근 장젠을 ‘애국 기업가의 모범’으로 치켜세우며 장젠 정신을 본받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 주석은 난퉁박물관을 찾아 장젠의 전시장을 둘러보며 ‘실업구국(實業救國)’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장젠을 본받아 신기술 혁명에 뛰어들자는 평론까지 실었다. 미중 갈등 와중에 서방의 공세에 맞서 민족 기업 육성을 통해 위기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의도야 어떻든 중국마저 자국 기업을 영웅이라며 치켜세우기 바쁜데 우리는 규제 3법 등으로 기업 옥죄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