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민주주의 수호 선결과제는 제도개혁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트럼프 선거업무 담당자에 압력

美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어

공정 기구 구축·우편투표 표준화

원활한 정권이양 법규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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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이후의 미국을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앞으로 여러 해에 걸쳐 미국의 정치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숱한 도전과 위협에 직면했던 미국 정치 제도의 개혁에 관한 논의는 지금 당장 시작한다 해도 결코 이르다고 할 수 없다.

이제까지 미국이 보여준 유연성으로 미뤄볼 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 한마디만 하자. “창밖을 내다보라.” 지금도 미국의 대통령은 그의 직위와 힘을 이용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든다. 다행히 트럼프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법원은 법의 잣대를 구부리기를 거부했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판사들조차 그들이 선택한 정당 대신 법을 따랐으며 지방의 일선 관리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해냈다.


이 모두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렇기는 해도 지난 두 달 새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근본적인 약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미국의 선거는 비정치적인 연방 정부 관리들이 아니라 지방 정치인들이 관장한다. 양당의 선출직 혹은 임명직 대표들이 선거를 모니터하고 그 결과를 집단으로 인증하는 식이다. 이 같은 선거인단 제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당 대표들 모두 최종 승자가 누가 됐건 공정한 선거 결과를 인증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예외였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전국당 위원장, 다수당 상원 지도부 및 현지 당 지부장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의 구성원 모두가 일심동체가 돼 지방의 선거 담당 관리들에게 정해진 인증 절차를 연기하거나 거부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예를 들어 결선 투표를 앞둔 조지아주의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 의원 두 명은 같은 당에 속한 브래드 래펀스퍼거 주 국무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조지아주의 선거가 공정했다고 공식 확인한 그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시간의 공화당 지부 간부들은 4인으로 구성된 주 선거조사위원회 멤버인 두 명의 공화당원에게 선거 결과 인증을 거부하라며 압력을 가했고 결국 둘 중 한 명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인 아론 밴 랭벌드(40)가 꿋꿋이 버틴 덕에 미시간의 개표 결과는 공식적인 인증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시간에서 15만 표차로 트럼프를 꺾었다.)


그러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는 앞으로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주요 경합 주의 공화당 관리들에게 계속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것이다. 만약 대통령의 표적이 된 래펀스퍼거나 랭벌드가 정치판에서 그대로 퇴출된다면 향후 선거에서 이번처럼 박빙의 결과가 나왔을 때 해당 주의 최종 개표 결과 인증을 담당하는 공화당 관리들은 당을 국가보다 우위에 놓거나 아니면 자신의 커리어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인증을 담당할 공화당 소속 지방 관리들은 래펀스퍼거나 랭벌드만큼 청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파 색이 강한 공화당계 젊은 판사 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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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거 제도는 일반 시민과 민간 단체들이 정기적으로 공식적인 선거 업무를 관장하는 앵글로색슨 시스템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앵글로색슨 방식은 각 주 정부에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하는 프랑스의 대륙법 시스템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앵글로아메리카 시스템은 일반 시민들이 공익을 사익보다 앞세울 것이라는 인식이 주축을 이룬다. 트럼프는 바로 이 같은 가정을 흔들어 놓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일련의 개혁을 해야 한다. 먼저 당파적인 관리들이 아니라 비정파적인 무소속 민간인들로 구성된 기구가 선거를 관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유권자 등록, 우편 투표, 재검표와 선거 결과 발표에 관한 표준화된 규정이 확립돼야 한다.

트럼프 시대의 경험을 근거로 불문율로 여겨지던 전통과 관행을 법제화하는 보다 광범위한 일련의 개혁 조치도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이해 상충의 잠재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세금 보고 서류도 일반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선거의 승자들은 임기 중 그들이 소유한 비즈니스나 자산을 제삼자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하고 절대 간섭을 하지 않는 ‘블라인드 트러스트’를 의무화해야 한다.

선거 제도와 관련해 손을 봐야 할 또 한 가지는 선거에서부터 당선인의 취임에 이르는 기간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너무 길고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후임자의 취임 이전까지 지나치게 과도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풀지 않거나 조 바이든에게 정보 브리핑을 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런 종류의 위험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따라서 원활한 정권 이양과 퇴임하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재산 증식, 후임자 발목 잡기 등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법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함으로써 트럼프는 이 제도가 지니는 약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민주적인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4년 후 트럼프 본인이 혹은 그와 유사한 성향의 정치인이 다시 등장할 때에 대비해 미국의 민주주의는 충분한 제도적 장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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