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최영기 칼럼]삼성·현대차의 노사관계 전환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삼성 경영진 무노조 경영 폐기하고

현대차 강성노조 임금동결에 합의

韓 노사관계 변화시킬 단초로 주목

능동적 리더십으로 협력관계 정착을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훗날 2020년이 한국 노사 관계 전환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올해 삼성그룹 경영진과 현대자동차 노사가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를 보며 갖게 된 생각이다. 지난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폐기하고 노사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9월에는 국내 최강성 노조인 현대자동차 노조와 사측이 임금동결에 합의하고 노사 공동 발전을 다짐하는 사회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이들 기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파격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더구나 삼성과 현대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며 노사 관계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변화의 방향이 극단에서 정상 상태(normalcy)로의 진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변화 주체가 오너 최고경영자들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리 노사 관계에 대한 국제 평가는 낯 뜨거운 수준이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노사 협력 수준은 141개국 중 130위다. 이 지표를 보는 순간 어느 누구도 우리 노사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엄두가 안 나고 노사 관계의 미래에 대한 일상의 대화는 흔히 절망과 자포자기로 흐른다. 그러나 2018년에 한국은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일곱 번째 나라가 됐고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현대차, LG와 SK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노사 관계만 세계 최악일 수 없다. 삼성의 성공이 무노조 경영전략 때문이 아니듯이 투쟁적인 노조가 현대차의 약진을 막지도 못했다. 무노조 삼성과 강성 노조 현대차의 경영이 성공적이었다면 한국 노사 관계에 대한 지나친 자학적 평가도 멈춰야 한다. 더구나 노사 협력 130등은 객관적 국제 비교 데이터에 근거한 순위가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기업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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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가에 불편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파업에 찌든 현대자동차나 부당노동행위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삼성의 노사 관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첫째, 현대차는 1998년의 경영 대참사를 딛고 나름대로 최적의 선택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정세영 회장은 IMF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어설픈 노동조합 손보기와 대대적인 정리 해고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결과는 대참사에 가까웠다. 기업은 더 큰 위기에 몰렸고 노사는 전쟁 상태로 치달았다. 1999년 경영권을 넘겨받은 정몽구 회장은 정반대의 노사 전략을 구사했다. 생산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타협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노조의 횡포가 적지 않았지만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았다. 그 대신 생산의 안정과 10년 품질보증을 내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해갔고 경영 성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성공이었다. 과연 지난 20년의 노사 관계를 실패한 모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둘째, 삼성의 무노조 전략도 나름의 강점을 발휘했다고 봐야 한다. 직원들이 노조를 필요로 하는 순간 그 경영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기준을 세우고 사람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경영 철학은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일 수 있다. 다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과 노동의 조건이 달라지며 삼성과 현대차의 기존 노사 관계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고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다행히 2020년 삼성과 현대차는 새 경영 체제를 정비하며 노사 관계 전환의 계기를 잡았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선언이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의 노사 협력 다짐 한 번으로 새 노사 관계가 탄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SK와 LG의 모범적인 노사 협력은 최종현 회장과 구자경 회장의 노동에 대한 전향적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LG그룹이 1989년 최악의 노사 갈등을 딛고 노사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구자경 회장의 솔선수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SK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와중에도 울산 지역에서 분규를 겪지 않은 유일한 사업장이었다. 외풍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차라리 강한 노조가 낫다는 최종현 회장의 시대를 앞서가는 노동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삼성과 현대차의 작은 몸짓이 한국 노사 관계 전체를 변화시킬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020년은 특별하다. 이제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경제 단체도 한국 노사 관계 전환을 위한 능동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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