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회가 전체 안건의 99.5%를 원안대로 의결하는 등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다만 기업들이 이사회 구성원을 늘리고 전자투표제를 잇따라 도입하는 방식으로 소액주주 의견을 반영하려 애쓰는 등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한층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58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이사회 현황 등을 담은 ‘2020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중 총수가 있는 51곳의 소속회사 1.905개 가운데 총수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16.4%였다. 반면 총수 일가들은 주력회사의 39.8%, 지주회사의 80.8%,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54.9%, 사각지대 회사의 22.2%에서 이사로 등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주력회사와 지주회사는 총수일가의 지분이 많아 이사로 등재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책임성을 강화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사회 상정 안건 중 대부분이 원안 가결(99.5%) 됐으며,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692건)의 경우 1건을 제외한 모든 안건이 원안 가결됐다.또 상품용역 내부거래 256건 중 253건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졌으며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도 78.3%에 달했다. 퇴직 임직원 출신이 사외이사로 선임된 경우도 발견됐다. 공정위 조사결과 19개 대기업집단의 35개 회사에서 계열사 퇴직 임직원 출신이 사외이사로 일하는 경우는 42건이었다.
다만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상장사는 법에서 요구한 선임기준보다 119명이 많은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등 예전대비 사외이사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최근 5년 새 가장 높은 96.5%를 기록하는 등 사외이사들이 예년 대비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투표제 도입 비중은 전년 대비 15.2%포인트 상승한 49.6%를 기록했다.
성 과장은 “사외이사·내부위원회·전자투표제 등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양적 확충에 비해, 운영 실태 등 질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며 “앞으로도 공정위는 기업집단 현황을 지속적으로 분석·공개함으로써 시장의 자율적 감시를 활성화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