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린 선언식에서 생중계 화면이 갑자기 ‘흑백’으로 전환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실질 탄소 배출 제로화’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환기하기 위해 극적 연출을 동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35분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하는 연설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던 도중 컬러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이는 청와대가 행사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야심차게 기획한 파격 시도였다. 천연색의 자연을 볼 수 있었던 산업화 이전 시절과 대조적으로 첨단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은 오히려 미세먼지가 가득한 회색빛 하늘에 갇혔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흑백 화면을 활용하는 그 자체로 친환경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4K UHD TV, 5G 등 기술 발달에 따른 고화질 영상을 이용할수록 탄소가 비례해 발생하기 때문에 컬러 영상의 1/4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 화면으로 변화를 줘 ‘디지털 탄소발자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디지털 탄소발자국은 디지털 기기에서 와이파이 등 네트워크를 거쳐 최종연결을 위한 데이터 센터까지 서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뜻한다.
탄소중립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폐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짙은 감색 계열의 넥타이를 착용했다. 생활 쓰레기, 의류 등에서 폐기되는 자원을 재활용해 제품을 제작하는 스타트업 ‘몽세누(MONTSENU)’의 제품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또 문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지구 환경의 악화 정도를 시간으로 나타내는 ‘환경위기 시계’도 배치했다. 문 대통령의 책상 위 시계는 ‘오후 9시 47분’을 가리킨다. 지난 1992년 당시 환경위기 시계는 오후 7시 49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더 늦기 전에’ 탄소중립을 향한 일상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지구를 되살릴 수 있는 만큼 국민 모두가 플라스틱을 줄이고 자연을 아끼는 행동에 동참해 줄 것도 당부했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전략을 담은 ‘장기저탄소발전전략안(LEDS)’을 마련하고 있다. 조만간 국무회의를 통해 LEDS를 확정한 후 유엔(UN)에 제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