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규제·징벌 법안 보완 시급...시행시기도 최소 1년 늦춰야"

[경제도 K방역 전철 밟나]

외국계 펀드 3%씩 지분 쪼개면 기업 이사 선임권 무력화

기업들 경영권 방어에 골머리...내년 투자 계획도 못세워

실업·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노사갈등만 부추길 가능성

홍남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 방향 경제 단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 방향 경제 단체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늑장 방역으로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원화 강세 등에 대처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 마당에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규제 입법까지 몰아세우니 혼란스럽습니다. 당장 내년 투자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 기업 대표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혼란을 초래하는 규제 입법은 잠시 접고 투자와 일자리 유지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코로나19 방역은 소상공인 등의 경제활동을 고려해 잠시 늦췄다가 참사를 초래해놓고 정작 규제 입법은 경제에 대한 고려 없이 밀어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경제계가 정부 여당의 입법 독주에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공정거래법·노조법 개정안 등에 당장 기업의 투자 여부뿐 아니라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규제가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관련한 3%룰은 당장 기업들에 경영권 위기라는 생존의 문제다. 분리 선임되는 감사위원은 신규 이사여서 이들이 이사회에 진입하면 기업 경영 사항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외국계 투기 펀드들이 3%씩 지분을 쪼개 감사위원 선임을 요구하면 기업들의 이사 선임권이 무력화되면서 경영권 위험에 노출된다.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39%로 이들 중 절반만 결집해도 이들이 원하는 감사위원 선임이 가능하다.


더구나 외국인이 지분을 공시해야 할 의무는 지분 5% 이상일 때 발생해 기업들은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이 입법 과정에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 합산 3%가 아닌 개별 합산 3%로 일부 규정을 완화했지만 지분이 계열사 한 곳에 몰려 있는 지주사 체제의 경우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주주 의결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임을 도입할 경우 투기 세력이 연합해 국내 시가총액 30위 기업 중 23개 이사회에서 감사위원을 진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LG화학·포스코 등이 공격 대상으로 거론됐다.

경제계가 △시행 시기 1년 유예 △분리 선임된 감사위원의 이사 자격 제외 △의결권 행사를 위한 주식 보유 기간 최소 1년 이상 규정 등을 보완 입법해줄 것을 요구하는 이유다.


다중대표소송은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저해하는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기업들은 통상 외부 경영권 위협이 낮은 비상장 자회사를 통해 위험도가 높은 신성장 동력에 대해 투자를 단행하는데,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상장사인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에 소송을 걸 수 있다. 소송 제기도 상장사는 전체 지분 중 0.5%만 갖고 있어도 가능해 문턱이 낮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 때문에 경제계는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 중 완전 모자 회사 관계인 경우에 한해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보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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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대주주 의결권 제한, 다중대표소송제 등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확대도 기업에는 큰 부담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210개인 규제 대상 기업이 법 시행일인 내년 말부터 598개로 늘어나는데 당장 이들 기업은 규제 회피를 위해 보유 주식을 팔거나 내부 거래 비중을 낮춰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도 노사 갈등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업자와 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서 노사 분규는 더욱 갈등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입장이다. 당초 정부안에는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되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에 제한을 두는 등의 단서 조항이 포함됐지만 국회 심사 과정에서 단서 조항이 삭제됐다. ‘생산 주요 시설에서의 쟁의 행위 금지’ 조항도 빠졌다. 현행 노조법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됐다.

경제계는 기업 규제 3법에다 경영자에게 최소 3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비롯해 집단소송제·징벌적손해배상제 등 징벌 3법까지 도입되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법안의) 무더기 통과로 경제계는 규제 쓰나미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암담하다”며 “상법 개정안 시행을 1년가량 미뤄 대비할 시간을 보장하고 일부 법안은 보완해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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