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로터리]일찍 울린 종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올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종료종이 일찍 울려 피해를 입은 수험생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민 청원에 행정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시험장의 방송 담당 선생님이 시간을 잘못 보고 종을 울린 바람에 서울 및 대전의 고사장에서 각각 4분, 3분씩 일찍 종이 울린 것이다. 수험생들은 다음 시험 시간에도 종이 빨리 울릴지 모른다는 불안함 가운데 시험을 치렀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정확한 시간의 문제는 비단 이번 수능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일어났다. 지난 2014년 4월 온 국민의 마음을 울린 세월호 침몰 사건 때도 시간 정합성 문제가 있었다. 당시 사고 분석을 위해 선내 CCTV와 적재 차량의 블랙박스를 복원했지만 영상의 시간이 모두 달라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제각각인 영상의 시점을 하나로 묶는 동기화 작업을 위해 대상의 움직임·소리 등을 분석했다. 마침 한 블랙박스에 KBS 라디오의 정시를 알리는 시각 정보가 기록돼 모든 영상의 잘못된 시간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지진계의 진원지 분석, 전력 계측과 분배, 비행기와 배의 운항, 국방의 레이더망 등 정확히 동기화된 시각망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의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다. 자율주행차를 위한 각종 IOT 센서들은 정확한 시각 동기화가 생명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의 대부분 영역에서 시각 동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국가 주요 시설과 항공기·선박·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장치 등 일부가 미 해군이 운영하는 GPS(위성항법시스템)에 의존해 맞춰지고 있다. 그러나 GPS는 방해전파에 취약해 전파 교란의 위협이 언제나 존재하며 건물 내부에서는 신호가 수신되지 않아 활용이 어렵다. 또 어느 순간 미국이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GPS 신호를 암호화하거나 차단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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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준시를 생성하고 보급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표준연은 한반도 전역에 동시 시간 보급이 가능하고 실내에서도 수신이 가능한 65㎑(장파) 표준시보국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5㎒(단파) 표준시보국의 신호가 일부 지역에 수신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는 우리나라의 독자 위성항법 시스템인 KPS 사업을 보완할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표준연은 지난 1년간 여주에서 표준시보 시험국을 운영하며 설계와 장비 구축 역량을 갖췄고 전국 주요 지역에서 정확하고 안정적인 신호 수신을 확인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를 국가표준시보국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토 정중앙에 위치한 양구에 위치할 계획으로 관련 부처 및 양구군 등과 협의해 부지와 사업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 산업과 경제 발전, 국방과 자주 안보를 위해 국가 자립 시각 동기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가표준시보국이 세워져 국민 누구나 전파시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번 수능에서 일찍 올린 종처럼 시간 불일치로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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