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기업 팔 비틀면 부작용 커"…사실상 '탄소중립 연착륙' 유도

[산업부 '탄소중립 감속 법안' 추진]

탈탄소 전환 비용·일자리 문제 등

구체적 대안 없이 기업에 부담만

강제했다간 공장 해외이전 우려

산업부 '자율변화 유도'에 초점

재계선 "냉정한 현실 인식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계의 탄소 중립 연착륙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정책 목표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만 내놓았을 뿐 탈탄소 공정 전환에 따른 비용 증가와 일자리 감소 우려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이 산업구조 변화 등 정교한 로드맵 없이 기업에 부담만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시한을 못 박아 목표 달성을 강제했다가는 부작용만 키울 수 있는 만큼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독려하는 게 보다 현실적이라고 산업부는 판단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탄소 감축만 강조하면 정유와 석유화학·철강 등 국가 기간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생산량을 감축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수밖에 없다”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다 일자리를 외국으로 내쫓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탈탄소 공정 수백조 원 소요…실현 가능성도 불투명


정부는 지난 7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등 주력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겠다며 ‘제조업 르네상스 2.0’를 통해 미래상을 제시했다. 발표안에는 철강 산업에 수소 환원 제철과 전기로를 적용하고 시멘트 산업에는 석회석 대체 원료와 수소 기반 소성로를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이 담겼다. 석유화학과 정유 산업에서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S·CCUS) 기술과 에너지 효율 개선, 그린 수소 활용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고 평가한다. 우선 철강 부문을 보면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상용화 시기조차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관련 기술 연구에 나섰던 독일·스웨덴 등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 기술의 상용화에 20~30여 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철강 업체들이 수소 환원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려면 기존 용광로(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 전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CCS·CCUS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수백조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CCS 활용을 위해 저장소를 확보하고 관련 기술력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만 40조 원에 달한다. CCUS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200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밀어붙인다고 목표 달성 어려워


비용을 감안하면 기업의 팔을 비트는 식의 제재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산업부는 판단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 단위의 비용을 투입해도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기술 개발에 나서느니 과징금을 내는 쪽을 선택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 위주인 발전 부문과 달리 민간 사업자가 대부분이라 법적으로 강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선진국에 비해 탄소 배출이 많은 국내 산업구조를 고려하면 무리한 탄소 중립 추진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지난해 기준 28.4%로 유럽연합(EU·16.4%), 미국(11%)보다 최대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며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의 비중 역시 8.4%로 독일(5.6%), 일본(5.8%) 등 주요국보다 높다. 실제 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 등 5대 업종협회는 급진적 탄소 중립 추진 시 제조업 생산은 최대 44% 감소하고 일자리 역시 최소 86만 개에서 최대 130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 중립 목표에 대통령이 너무 앞서 달리고 있다”며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율 변화 이끄는 게 보다 현실적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탄소 중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한국 사정에 맞는 전략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굴뚝 산업의 특성상 기존 설비를 친환경 설비로 단기에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산업 피해를 고려해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가 기업의 자율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목표 미달성에 따른 과징금 부과 등 규제 방식을 지양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해 자율적인 감축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가 탄소 중립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감안해 감축 계획을 설계할 때 업계 등과 사전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