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연간 OCI가 국내에서 더 이상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업체의 저가 물량 공세로 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이 이유지만 OCI의 사업 철수는 급격한 인건비와 전기 요금 상승 탓이다. 폴리실리콘 제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전기 요금은 OCI의 실적 악화에 결정타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 요금이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만큼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을 따라갈 수 없다”며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근간인 태양광 소재가 비싼 전기 요금에 밀려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OCI의 군산 공장 철수는 우리 산업 경쟁력에 전기 요금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기 요금 인상분을 기업들이 충분히 떠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인상분만큼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 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에너지 비용 부담 현황 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산업용 전기 요금 수준에 대해 94%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 기업 가운데 종사자 50~100인 미만의 소기업들은 100%가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전기는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원자재”라며 “전기 요금 상승은 소비재 가격뿐만 아니라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기 요금을 2000년부터 20년간 용도별로 분석하면 가장 많이 오른 용도가 산업용이다. 주택용 요금은 2000년 이후 인상과 인하가 이어지며 한전 요금 조정률 산식에 따르면 올 8월까지 4.7% 인하됐다. 2017년 1월 누진제 개선에 따라 11.6% 내린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교육용과 농사용도 각각 18.6%, 13.6%에 그쳐 상대적으로 인상 폭이 작았다. 이에 반해 산업용은 89.6%나 인상됐다. 20년간 17차례의 전기 요금 조정 과정에서 산업용은 13차례 올랐으며, 특히 2005~2013년에는 11차례나 연속 상향됐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원가 대비 요금을 보여주는 원가 회수율이 2018년 103.8%로 뛰어올랐다. 2008년 원가 회수율이 73.5%였던 것과 비교해 10년 동안 30.3%포인트나 상승한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산업용 전기 요금이 오른 것은 기업 경쟁력보다 대기업 특혜 여론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 산업용 전기 요금에 대한 인상 압박 강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2018년 9월 탈원전 후속 대책으로 산업용 심야 전기 요금의 인상을 검토하겠다는 발표 이후 심야 전기 요금 인상은 기업들에 원가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한전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3년까지 심야 전기 등 경부하 요금에 대한 요금 체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유가가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이번 전기 요금 체계 개편이 당장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으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발전원이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에너지로 바뀌며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력도매가격(SMP)에 영향을 미치는 LNG 가격은 유가에 연동한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석유 수요가 늘고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계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기 요금이 인상될 경우 원가 부담 증가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석유화학·정유·철강 등 주력 산업이 대부분 전기 다소비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 10월 한전 ‘전력 통계 속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 총판매량 3만 9,065GW 가운데 제조업 비중은 52%에 달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중국·대만 등이 산업용 전기 요금을 내리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산업용 전기 요금을 올린다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전기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할 텐데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