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보관 중인 트리튬(삼중수소) 함유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 방류 처분에 대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견해를 거듭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1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 본부에서 교도통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리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점을 근거로 해양 등에 ‘처리수’를 방류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방일해 후쿠시마 제1원전을 둘러본 뒤 연 기자회견에서도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오염수의 해양방류가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관행에 부합하고, 전 세계 원전에서 비상사태가 아닐 때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국내외에서 반대론이 강한 해양방류 방식의 오염수 처분을 IAEA 사무총장이 지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로시 사무총장이 일본 정부 입장만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는데, 이번에도 일본 정부 편들기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에서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를 일으킨 원자로 내의 용융된 핵연료를 식히는 순환냉각수에 빗물과 지하수가 유입돼 섞이면서 방사성 오염수가 계속 생기고 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현재 하루 140t가량씩 불어나는 이 오염수를 핵 물질 정화장치인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해 탱크에 담아 보관 중이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여름이 되면 계속 불어나는 오염수로 총 137만t 규모의 저장탱크가 차게 되면서 폐로 작업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며 태평양으로 흘려보내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오염수가 ALPS를 거친 점을 들어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고 부르고 있다.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해양방류로 처분할 경우 물로 희석해 기술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트리튬 농도를 법정 기준치의 40분의 1 수준인 ℓ당 1,500베크렐(㏃, 방사성 물질의 초당 붕괴 횟수 단위)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물로 희석해도 방출 총량은 결과적으로 같아져 지구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보관된 오염수 약 120만t을 기준으로 한 트리튬 함유 총량은 약 860조㏃로 추산되고 있다. 오염수의 해양배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은 정상 원전에서 나오는 것과 노심용융 사고 현장에서 생긴 고농도 오염수는 정화처리했다고 해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애초 지난 10월 해양방류로 오염수 처분 방침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육상보관을 계속하라고 요구하는 어민단체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최종 결정을 미뤄놓은 상태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10일 “언제까지나 (처분 결정을) 미룰 수는 없다”며 조만간 방침을 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19일 후쿠시마를 방문한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언제까지나 방침을 정하지 않고 미룰 수는 없다”면서 폐로 작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처분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번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오염수 처분 문제를 일본 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처분 방침이 정해지고 일본 정부가 요청하면 국제 감시팀을 즉각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민 단체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서 해양방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해선 “IAEA가 매우 건설적인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에 대해 교도통신은 IAEA가 일본과 협력해 오염수 해양방류를 둘러싼 일본 국내외의 우려를 불식하는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해 7월 임기 중 사망한 일본 출신의 아마노 유키야 전 사무총장 뒤를 이어 작년 12월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