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야권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103석의 국민의힘은 3석인 국민의당에 입당 또는 합당을 통한 경선을 주장하고 있고 안 대표는 이에 응하지 않고 100%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통합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서로 “내가 나서겠다”고 싸우다 여권에 선거를 내주는 2018년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안철수 대권 접고 ‘결자해지’, 양보 불가능해
야권단일화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안 대표가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후보를 양보할 확률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세 가지를 강조했다. ‘결자해지’와 ‘대권 승리’, 이를 위한 ‘대권 포기’다.
야권 대권주자 1, 2위를 다투는 안 대표는 최근까지 대권 직행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야권 원로들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대권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는 조언을 하면서 안 대표는 사실상 대권을 포기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정권 교체의 교두보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체급을 낮춰 나간 서울시장 선거에서마저 지면 정치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안 대표로선 정치생명을 건 결단이다.
그러면서 9년 전 박원순 전 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본인의 과오가 문재인정부의 탄생의 시발점인 점을 강조하며 ‘결자해지’를 내세웠다. 안 대표 외에 결자해지를 말할 수 있는 야권의 인물은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스스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여전히 대권에 도전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인물 가운데 안 대표보다 명분이 앞서는 후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103석 국민의힘, 安에 양보 요구 땐 단일화 ‘불발’
문제는 국민의힘이 안 대표를 추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경원, 이혜훈, 김선동, 이종구 전 의원에 이어 조은희 서초구청장 등 당내 인사들이 줄줄이 출마선언을 한 상황이다. 안 대표와 단일화를 섣불리 거론했다간 당내 불만이 터질 수 있다. 이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안 대표의 출마 선언에 대해 “크게 반응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정진석 의원은 안 대표에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대의를 좇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 사실상 합당을 통해 경선에 참여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안 대표에게 사실상 국민의힘에 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국민의힘 재·보궐선거 경선준비위원회는 경선룰을 △예비경선 100% 국민여론조사 본경선, 국민여론조사 80%-책임당원 20% 등으로 정했다. 안 대표가 예비경선에서 이겨도 당원 20%가 참여하는 본경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더욱이 103석의 국민의힘 내부에서 3석의 국민의당과 각각 후보를 내고 다시 야권단일화 경선을 하면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제1야당의 경선 과정이 마치 안 대표와 단일화를 위한 과정으로 치부될 수 있어서다.
“합당하라 vs 양보하라” 2018년 선거 재연출되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서로 야권단일후보가 되겠다고 싸우다가 여권에 선거를 내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안 대표는 당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적극적으로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대표는 그때도 “제가 유일한 야권 후보”라며 “저만이 일대일로 붙어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문수 후보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대국민토론회와 여론조사방식을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김 후보는 ‘당 대 당 통합’을 요구했고 결국 단일화는 무산됐다.
점입가경은 단일화가 무산되자 야권은 서로 헐뜯는 구태를 보인 것이다. 김 후보는 “안철수 후보를 찍으면 박원순 후보가 당선된다”며 이른바 ‘안찍박’을 강조했다. 안 대표는 김 후보에 “서울시장에 관심이 없고 선거 이후 정계개편의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고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현 무소속 의원)에게는 “어차피 문 닫을 정당이라면 야권 단일화에 협력하라”고 지적했다. 결국 선거는 박원순 전 시장이 52.79%를 득표해 김문수(23.34%), 안철수(19.55%) 후보를 가볍게 이기고 당선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대표는 양보하면 정계를 은퇴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은 양보하면 사실상 안 대표를 추대하는 꼴이 된다”며 “‘경선룰’ 수정과 같은 당내 문제를 넘어 중도-보수진영이 대통합요구가 있어야 야권단일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전 대표가 이끄는 마포포럼 등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