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영화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모교인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입학 당시(1999년) 난 ‘그렇게 똑똑하지 않은데 어떻게 하버드에 입학한 걸까. 실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자기 회의(self-doubt)에 빠졌다”고 밝혔다. 멍청한 여배우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려운 수업만 들었다는 부끄러운 과거도 숨기지 않았다. 졸업생들은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갈채를 보냈고 언론에서는 ‘가면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가면 증후군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운으로 얻어졌고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져 초라한 실체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불안 심리를 일컫는다. 성공의 요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 덕으로 돌리고 자신을 자격 없는 사람 혹은 사기꾼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으로 불리기도 한다. 1978년 미국 심리학자인 폴린 클랜스와 수잰 임스가 처음 쓴 용어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가면 증후군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정신건강 상담자와의 인터뷰에서 가면 증후군을 겪은 경험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더 긍정적 방향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면서 “TV에서 범죄물을 즐겨 본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가면 증후군에 잘 대처하고 있지만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나름의 방어 기제를 동원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가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외부의 비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실수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철벽 방어에 골몰하기 쉽다.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유아독존식 태도나 기존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국 심리학자 해럴드 힐먼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진정성을 치료법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들이 성공 신화에만 집착해 무리한 정책을 고집하거나 실패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K방역’에서도 자화자찬에서 벗어나 패착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길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