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美공화당의 '팩트 혐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선거 패배 부인등 원하는 것만 수용

사실 혐오론, 레이건 정권서부터 유래

트럼프 퇴진해도 ‘부정’의 기류 이어갈 듯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화당은 지난 한 해의 거의 전부를 과학을 부정하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명명백백한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팬데믹과 선거패배 부인이 지니는 공통점은 무얼까. 미국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공화당이 원치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스크 착용 무용론이라든지 광범위한 선거부정 따위의 잠꼬대 같은 주장을 공화당이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필자로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이슈에 믿음의 프레임을 덧씌운다면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나올 경우 제아무리 공화당 골수분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실적으로, 공화당이 말하는 믿음은 그것이 치명적 질병에 대한 외면이건, 아니면 유권자들의 평결을 무시한 권력유지이건 간에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요점은 공화당이 사실이 아닌 것을 신봉한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당의 정치적 목표와 충돌하는 객관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에 심한 적대감을 보이는 정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일부” 공화당원과 같은 제한적 수식어를 쓰지 않은 점을 주목하라. 지금 여기서 우리는 공화당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선거결과를 뒤집어달라며 텍사스 주가 연방대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얼토당토않을 뿐 더러 대단히 비(非)미국적이다. 하지만 공화당 연방하원의원들 중 60% 이상이 텍사스 주가 제기한 소송에 공개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한 반면, 이를 비난한 공화당의 선출직 관리들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현 시점에서 사실 혐오론자가 아니면 올바른 공화당원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어쩌다 공화당이 이런 지경에 처했을까. 이 같은 상황의 근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였기 때문에 그의 퇴진과 함께 이 모든 것이 끝나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공화당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바로 이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공화당이 악의적인 광기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는지 필자의 입장에서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지만 그 궤적을 역으로 짚어보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치하에서 불가역적인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공화당은 레이건을 흔들리는 국가를 위기상황으로부터 건져 올린 구세주로 묘사해가며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공화당의 레이건 찬양은 대부분 선전선동(프로퍼갠더)에 불과하다. 레이건 치하에서 미국 경제가 지미 카터 시대에 비해 다소 빠른 속도로 성장한 반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성장률과 비교해보면 큰 폭으로 뒤진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독자들은 모를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급속한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의 혜택이 극소수의 엘리트층으로 흘러갔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성장에 따른 과실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989년에 측정된 빈곤율 역시 10여 넌 전에 비해 오히려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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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내총생산(GDP)이 웰빙의 동의어는 아니지만 레이건 시절에 작성된 다른 통계치들도 그 당시에 우리가 이미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던 중이었음을 가리킨다.

예컨대, 1980년의 미국인 기대수명은 다른 경제선진국들과 거의 유사했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는 미국인 사망률이 여타 선진국들과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시초에 해당한다. 오늘날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비교 가능한 대상국들의 관련 수치에 비해 거의 4년이 짧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레이건 치하에서 비합리성과 함께 팩트에 대한 혐오감이 공화당의 내부기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시절이건 음모론을 지어내고 과학을 혐오하는 반민주적 분파는 늘 있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류에 속한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 기구들은 이같은 분파들과의 연합을 거부하며 이들을 정치적 주변 세력으로 묶어 두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레이건은 광적인 소수집단을 공화당의 장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필자는 감세의 마술적 힘을 신봉하는 경제 독트린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장본인이 레이건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레이건 행정부가 눈에 뜨일 정도로 과학에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적대감을 실천에 옮기는 레이건의 능력은 하원 다수당이었던 민주당과 당시만 해도 상당수에 달했던 온건한 중도성향 공화당 상원의원들에 의해 제한됐다. 그럼에도 레이건과 행정부 관리들은 산성비 위협을 부정하는 한편 진화론이란 그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앞세워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부추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같은 과학 배척은 부분적으로 과학에 기반을 둔 규제를 마땅치 않게 보는 특수이익집단들에 대한 경외감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우파들의 영향력이다. 레이건 치하에서 주요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한 이들은 공화당 연맹체의 핵심으로 자리를 굳힌데 이어 지금은 팩트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당의 주요 동력체로 기능하고 있다.

자신들이 신을 대신해 행동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팩트 거부는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원하지 않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의 영혼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시종들이라면, 설사 그들이 선거에서 더 많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었다 하더라도 통치권 행사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레이건 시절 처음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된 TV복음전도사 팻 로벗슨은 며칠전 텍사스 주가 연방대법원에 제기한 소송을 두고 트럼프를 권좌에 다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한 ‘기적’으로 선포했다.

결론은 이렇다. 올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공화당의 팩트 거부는 일회성 일탈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오래전에 시작돼 이제 정점에 도달한, 거의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 퇴보(degradation)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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