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통과시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부양책에 퇴짜를 놓은 데 이어 군사비와 국가 안보를 다루는 국방수권법(NDAA)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의회는 다음 주 재의결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부양책과 함께 처리되는 예산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해를 넘길 수 있어 큰 혼란이 예상된다.
23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감스럽게도 NDAA는 중요한 국가 안보 조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며 “(의회 안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리나라와 독일·아프가니스탄을 언급하며 이곳에 주둔한 미군의 감축을 제한한 NDAA 조항이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가 작성해 올린 콘텐츠에 대해 운영 업체에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가 NDAA에 포함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
군의 이름을 딴 미군 기지와 군사시설의 이름을 바꾸는 조항이 포함된 것도 지적했다.
이에 관련해 미 하원은 28일, 상원은 29일 재의결에 나설 방침이다.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나오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앞서 하원이 최종안을 335 대 78, 상원이 84 대13으로 통과시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의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9,000억 달러(약 993조 원) 규모의 코로나19 추가 부양책과 1조 4,000억 달러짜리 2021 회계연도(2020. 10~2021. 9) 연방 정부 예산안 처리는 상황이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1인당 직접 지원금을 현행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올려야 한다고 하자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에 동의하면서 24일 임시회의 때 이를 처리하자고 했다.
하지만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펠로시 의장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재정 적자를 이유로 경기 부양책 규모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온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난처해졌다. 특히 내년 1월 5일 조지아주 상원 결선투표를 앞두고 개인 지원금 확대에 반대할 경우 표가 이탈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서는 28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예산안에 서명하지 않거나 거부권을 행사하면 연방 정부는 셧다운(폐쇄)될 수밖에 없다. 미 의회는 수차례의 연장을 거쳐 28일까지 임시 예산안을 편성해놓은 상황이다.
부양책과 예산안의 경우 앞으로 △의회가 합의를 통해 지원금 2,000달러로 상향 △의회, 기존 합의안(1인당 600달러) 재의결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 끌기 등의 가능성이 있다. 이중 기존 합의안 재의결은 앞서 상원에서 92 대 6, 하원에서 359 대 53으로 통과됐기 때문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어렵지 않다. 28~29일 NDAA와 같이 처리할 수도 있다.
다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명확히 행사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놓고 시간을 보내면 상황은 더 꼬인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 시한(일요일 제외 10일)을 넘길 때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포켓 거부권’을 택할 경우 회기 중일 때는 법안이 자동 발효된다. 그러나 회기 중이 아닐 때는 법안이 자동 폐기된다. 이번 회기는 내년 1월 3일에 끝난다. 예산안이 이번 주말 백악관으로 넘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회가 1월에 다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WSJ는 “공화당 소속 상원 법사위원장인 린지 그레이엄은 의회가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를 NDAA에 넣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NDAA와 코로나19 부양책을 지지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면서도 “다른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체적인 전략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드 밀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앞으로 며칠간 불확실성을 크게 높이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의회에서 통과시킨 대로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