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사법리스크' 장기화...삼성, 133조 반도체 투자·M&A 차질 불가피

■이재용 징역 9년 구형

80여회 재판출석 등 법정다툼 속

경영권 승계 재판도 내년 본격화

시스템반도체 세계1등 달성 흔들

2016년 이후 대형 M&A도 잠잠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 끼칠수도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 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 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넘게 삼성을 짓눌러온 사법 리스크가 새해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내년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 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 재판과 별도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된 재판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은 국정 농단 사건보다 훨씬 복잡해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4년 이상 걸릴 수 있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삼성 ‘잃어버린 10년’ 우려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재계에서 나온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유례없이 장기화하며 삼성의 대규모 투자 및 M&A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 2016년 11월 국정 농단 사건 관련 특검 수사가 시작된 뒤 4년여 동안 전례 없는 사법 리스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다. 이 부회장은 검찰에 10차례나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 심사만 3번 받았다. 특검에 기소돼 재판에 출석한 횟수는 80여 차례에 이른다. 이 기간 국내외 사업장을 찾아 현장 경영을 하거나 해외 국가 정상 및 기업인과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한 횟수보다 법정에 선 날이 더 많을 정도다.

2018년 11월부터 1년 8개월간 진행된 검찰의 경영권 승계 관련 수사도 삼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검찰은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함께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0여 명을 430여 회 소환 조사했다. 전례가 없을 정도의 수사 강도다.

삼성으로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주력 사업의 실적을 낙관할 수 없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며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초유의 복합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미래 성장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삼성은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기회 선점은 고사하고 자칫 기회 상실로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신성장동력 사업 구상 틀어져

만약 내년 초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중형이 선고될 경우 삼성의 대규모 투자 및 M&A는 올 스톱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너 경영자의 리더십과 결단이 필요한 초대형 사업 구상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향후 3년간 180조 원 투자와 4만 명 고용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10년간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등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하며 삼성의 대규모 M&A는 이미 맥이 끊긴 상태다. 삼성은 2016년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 6,000억 원)에 인수한 뒤 대규모 M&A에 나서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SK·LG 등 대기업 총수들이 대형 M&A를 통해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SK하이닉스는 10월 ‘반도체 공룡’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일체를 10조 3,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또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전장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우는 LG전자는 최근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1조 원 규모의 합작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그간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해외 출장을 새해부터 크게 늘리며 M&A를 비롯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할 예정이었는데 국정 농단 파기환송심 선고라는 변수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위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이 부회장은 특검 수사와 재판으로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사인 엑소르의 사외이사직을 사퇴한 데 이어 중국 보아오포럼 상임이사직 임기 연장을 포기했다.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 등 글로벌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 리스크로 삼성의 글로벌 이미지도 타격을 받아 향후 삼성이 글로벌 투자나 M&A를 추진할 때 대외 신인도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재용·전희윤기자 jylee@sedaily.com

이재용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