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로터리] 1984년 오세아니아와 2021년 대한민국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한 해의 시작은 늘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올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직후 우리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들의 자발적 협조로 한때 방역 모범국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런 찬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그 찬사가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수시로 일일 확진 자수 최고치 경신 가능성, 방역태세 격상검토에 대한 보도들이 쏟아지는 요즘, 그런 아쉬움은 그저 감정의 사치에 불과하다.

오늘의 위기상황은 정부의 안일한, 그리고 왜곡된 대응이 불러온 당연한 귀결이었다. 백신 확보에 온 힘을 쏟았어야 할 때 엄청난 돈을 써가며 ‘K-방역’ 선전에만 몰두했고, 작년 여름 2차 재확산 때에도 정확한 원인을 찾는 대신 정치적 희생양 찾기에만 몰두했다. 철저하게 ‘과학 ‘이 주도했어야 할 방역을 ‘정치’가 주도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기꺼이 과학 대신 정치를 택했다. 그러는 사이 백신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원인조차 알 수 없는 3차 대확산이 시작됐고 이미 피폐해진 민생은 수차례의 긴급지원금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 생명과 민생에 대한 위협이 우리 사회의 주 관심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위기상황에서도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또 다른 위기가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근본구성원리인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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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해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공개하고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는 것, 이 과정에서 국가, 특히 행정부의 역할이 일시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의 제한, 정부의 비대화가 어느새 뉴노멀이 되고, 여기에 요즘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한 포퓰리즘과 정치·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일부 세력의 정치적 욕심이 맞물리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근본가치인 자유민주주의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의회 민주주의의 고향 영국을 어떻게 디스토피아 ‘오세아니아’에 비유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같은 저자의 ‘동물농장’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욕심, 괴벨스 ‘스퀼러’의 거짓선전, 홍위병 개·양들의 선동에 다른 수많은 동물의 침묵이 합쳐지자 애써 성취한 평등사회 동물농장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고 곧바로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한 곳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내부당원’, ‘외부당원’ 그리고 ‘프롤’이 각각 평등하게 된 새로운 평등사회 오세아니아에서는 빅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하며 각종 테러와 ‘사상경찰’, ‘신어’, ‘이중사고’를 동원해 대중을 통제·억압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현재를 지배하기에 과거를 지배하고, 그 과거의 조작을 통해 미래 또한 지배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공수처가 출범하고, 거대한 경찰조직이 본격적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5.18 왜곡금지법‘, ‘대북전단금지법’도 발효될 것이다. 더 나아가 ‘휴대폰 비번공개법’과 ‘1가구 1주택법’도 입법할 기세다. 이제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위기로 인권침해에 무뎌진 상황을 악용하는 이들에 의해 과다한 억압조치들이 취해지기 시작한다면, 여기에 윤석열 총장 건에서 보듯이 제도권 안팎에서의 비이성적 행태들이 일상화된다면, 현재의 권력을 통해 과거를 조작해서 미래마저 지배하려 한다면, 오랜 기간 피땀 흘려 일궈낸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우울한 얘기지만 ‘1984년 오세아니아’는 2021년 대한민국으로부터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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