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2021 싱크탱크 제언] 정책은 차가운 머리로 만들어야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최저임금·근로단축·부동산3법 등

취지만 착한 '감성 정책' 모두 실패

냉철하게 규제의 역설 돌아보길




흔히들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고 한다. 이제는 옷 한 벌, 커피 한 잔, 생수 한 병에도 감성을 불어넣고 또 그런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 팍팍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감성을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왜 이해가 안 되겠느냐만은 문제는 이 감성의 물결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돼버린 데 있다. 논리보다는 순간의 느낌, 객관적 판단보다는 직관으로 결정되는 정책. 과연 그 뜨거운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운 결과를 내고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보자. 탐욕스러운 사업주의 돈을 가난하고 선량한 근로자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은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정부는 결국 재계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7~2019년 3년간 최저임금을 30%가량 올리는 정책을 단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취약 업종의 일자리부터 감소했다. 운 좋게 일자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업주들의 근로시간 쪼개기로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 다반사였다. 근로자만이 아니다. 영세 사업자들도 인건비 부담으로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근로자도 사업자도 모두 불행해졌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정책도 마찬가지다. 과중한 업무와 장시간의 근로로 고통받는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정책 시행 이후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33만 원이나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고 이에 저임금 근로자들은 퇴근 후 투잡을 뛰며 임금을 보전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근로시간 연장이 필요한 사업주와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려는 근로자가 있음에도 당사자가 아닌 정부의 규제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약자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약자의 목을 조른 격이 됐다.


이러한 감성적 정책의 화룡점정은 부동산 정책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3법을 호기롭게 시행했지만 시장 원리를 무시한 규제는 각종 부작용만 일으켰다. 고가 주택은 물론, 풍선 효과로 중저가 주택마저 폭등시키며 서민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3년 전에 비해 2~3배 폭등한 집값에 ‘영끌’ ‘빚투’는 2020년을 대표하는 유행어가 됐다. 주택 한 채 마련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그야말로 ‘꿈’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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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서운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에 전월세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임대차 3법까지 시행했다. 임대료 상한선을 5%로 두고 최소 거주 기간도 4년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은 세입자를 위한 ‘착한 정책’으로 아름답게 포장됐다. 그러나 시장을 거스른 규제로 전세 시장 매물은 급감했다. 임대차 3법 시행 직후 지난해 9월 전세 거래량은 시행 직전인 7월 대비 57%나 감소했다. 수요에 미치지 못한 공급은 전세 가격 상승을 부추겼고 이는 월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집 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도 급격히 늘며 사회 갈등 또한 심화됐다.

우리는 지난 4년간 너무나 많은 ‘감성’ 정책의 실패를 봐왔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은 일자리를 줄이고,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책은 사상 초유의 집값 상승을 불러일으킨 ‘규제의 역설’을 온몸으로 겪었다. 시작은 분명히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인식, 분명한 정책 목표 설정과 전문가의 논리적 분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명분의 정책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스승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제자들에게 ‘차가운 머리, 뜨거운 심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모름지기 좋은 정책이란 세상에 대한 따듯한 시각을 가지되 차가운 머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2021년 새해에는 그동안의 과열된 마음을 내려놓고 냉철한 이성을 다시 찾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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