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배출하는 인재는 사회와 산업의 수요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은 대학의 본질에 관한 문제로 연결된다. 학문 연구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대학은 당장의 취업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평생 추구할 질문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지적 호기심과 탐구 역량을 기르는 곳이다. 하지만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일자리의 수가 급감하고 젊은이들의 구직이 힘들어지자 사회의 요구는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단기적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대학을 ‘인재 양성의 산실’이라 할 때 그 인재는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배운 실용적 지식을 십분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경제적 안정과 자아실현을 꾀하고 동시에 기업과 사회에 공헌해왔다. 반면에 이론적 지식도 중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학 때 배웠던 딱딱한 이론이 이런 얘기였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론이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결국 현실 설명력이나 예측력이 높기 때문이다. 실용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으며 둘 다 나름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먼저 실용적 측면을 보자. 대졸자가 사회로 진출해 일하는 직장의 대부분은 ‘기업’이다. 하지만 정보화 혁명에 이어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은 자동화된 시설을 관리할 소수의 인원이면 충분한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단 시일 내에 활용 가능한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다. 이는 제조업은 물론 금융이나 서비스 분야도 해당된다.
이러한 실용적 측면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이 어떻게 인재를 바라보느냐를 알아야 한다. 일부 기업이 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은 ‘전공 및 교양 교육의 업무 적합성’이다. 이는 대학 교육에서 배운 지식이 기업 업무에 곧바로 또는 약간의 보충 교육만으로 활용 가능한지를 보려는 것이다. 기업의 자기소개서에는 학업 과정 중 직무에 관련된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 활동이나 경험을 적으라는 내용이 있다. 기업이 피면접자에게 요구하는 내용이기는 하나 이는 기업이 대학에 바라는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은 체계화된 연구 조직을 갖고 있으며 사회에 기초적이고 창의적인 지식을 공급하는 중요한 엔진이다. 대학원 중심으로 이뤄져 온 연구 활동은 최근 학부로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다. 때 묻지 않은 학부생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는 발명·특허·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기업이 오랜 기간 풀지 못하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학부생, 대학원생, 신진 연구자, 교수들이 힘을 합해 때로는 근본적 이론에 천착하고 때로는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도 개발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결국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본령은 지키되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태도도 길러주고, 학생들이 산업 수요가 높아지는 실무 지식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스스로 혁신하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성균관대는 2020년 여름방학부터 ‘도전학기’를 통해 10주 동안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창의·융합·도전 능력을 키우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혁신융합’ 콘텐츠를 중심으로 구성된 교과·비교과·인턴십 프로그램에 모두 5,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도전학기는 외국어, 고전 교육, 독서 지도 프로그램 등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인문 사회 지식도 방학을 이용해 다질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현실과 유리된 대학 교육에 반발하면 언젠가 대학을 버릴 수도 있다. 대학은 상아탑의 영예에 갇혀 현실과 유리되어서도, 또 너무 현실 문제에만 집중해도 좋지 않다. 이론적 지식과 실무적 지식의 절묘한 조화가 이뤄지는 지점에 대학 교육과 연구의 방향이 있다.